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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성경적 관점에서의 올바른 기독교 영성(121) - 이정희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3.24 17:31 수정 2026.03.24 17:31

영성에 있어서 기복신앙이란?(16) /교회의 기복신앙 비판과 수용의 진단(1)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원로, 부산 백석신학대학교 겸임교수)

이정희 목사
이정희 목사
1. 들어가는 말
기독교적 입장에서 기복신앙은 잘못된 신앙일까? 아니면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지금까지 몇 차례 논하여 보았다. 대부분의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기복신앙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부는 “잘못된 기복신앙에는 빠지지 말아야지만 무조건 적인 비판은 안된다.”고 주장한다. 필자도 매우 조심스럽지만 후자의 경우를 일부분 지지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두 가지 견해가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지난 호에 이어서 계속 논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먼저는 단어에 대한 개념의 이해와 사용의 차이에서 오는 견해가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본 호에서는 이를 논하고자 한다.
2. 기도와 기복에 대한 단어적 의미
1) 국어사전의 의미: 먼저 기복(祈福)은 “복을 빎, 복을 내려 주기를 기원하는 일”로 되어 있다. 기복신앙(祈福信仰)은 “복의 기원함을 목적으로 믿는 미신적인 신앙”으로 미신적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에는 이를 왜 미신적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을까? 그 이유는 우리의 민족적 의미의 기복신앙은 전통적으로 복을 비는 행위로 보았고, 옛날부터 산천초목이나 일월성신에게 가족의 부귀영화와 만사형통의 복을 기원하는 행위를 미신적인 기복신앙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자료와 원문에 의하면 기도나 기복신앙에 대한 성경의 단어나 한문과 여러 사전적 정의는 국어사전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2) 성경의 단어적 의미: 기복이란 단어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복(福)이란 말은 수없이 많이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베라카’이고, 헬라어로는 ‘율로기아’, ‘마카리오스’ 등이다. 각 단어의 의미 차이는 다소 있지만, 거의 동일한 뜻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이나 물질적 은혜의 상태를 의미한다. 좀 더 세분해 본다면 구약은 주로 물질적 복에 초점이 있으며, 신약은 영적인 면과 내적인 면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한자의 단어적 의미: 우리 말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한자의 기도와 기복은 어떠할까? 이 단어들을 파자(破字) 해보면, 기도의 기는 빌 기(祈)와 신시(示), 도끼 근(斤)으로서 ‘신 앞에 도끼날처럼 두 손을 모으고 빈다.’는 뜻이며, 도는 빌 도(禱)로서 신시(示)와 목숨 수(壽)로서 ‘목숨을 보호해달라고 신에게 빈다.’는 뜻이다.
그다음 기복의 복은 빌 복(福)이다. 이를 파자하면 일신 시(示)에 찰 복(畐)과 하나 일(一)에 입구(口)와 밭 전(田)으로 ‘밭에서 난 곡식으로 한사람 먹고 사는 복을 달라고 신에게 빈다.’는 뜻이다. 이로 보면 祈나 禱와 福, 모두 신에게 도움을 구하고 비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3. 기복신앙의 단어와 본질에 대한 개념과 견해의 차이
1) 기복신앙을 미신적 개념으로 보는 한국 교계의 견해: 앞에서 언급한 대로 기복신앙에 대한 이해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무속적인 영향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김성례의 "기복신앙의 윤리와 자본주의 문화" (종교 연구) 27 (2002)의 내용에 의하면 “'기복신앙'은 주로 한국의 샤머니즘에 사용된 용어이며, '재수굿' 등에서 주로 현세적 금전과 건강과 장수의 복을 비는 행위가 많다. 그러나 영적인 복에 대한 개념이 없다. 또한 복을 비는 대상이 귀신들이나 조상신이며, 복의 내용도 주로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이며, 신앙에 따른 도덕성이나 윤리성이 없는 동시에 이에 대한 경전 자체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했다.
2)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미국 등 서구 신학의 견해: 현재 이들의 견해는 일명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을 비판하지 '복을 비는 것'(祈福) 자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 결과로 대표적 번영신학인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까지 수용하는 잘못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한국과 같은 맥락에서 기복신앙을 매도하지는 않는다.
4. 결론 및 제언
이상의 내용에서 본 바대로 현세적인 은혜를 구하는 기도와 행위를 하면 가장 먼저 기복신앙으로 취급하며 공격하는 것이 대부분 한국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대로 미국 등의 서구에서는 한국과 같은 차원으로 기복신앙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한국의 교계에서도 단어적 의미에서 보는 대로 '복을 비는 것'(祈福) 자체를 무분별하게 기복신앙으로 매도하는 것은 심사숙고하며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무비판적인 수용도 상당한 위험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이러한 비판이 없으면 오래전 논한 대로 한국적인 많은 이단과 잘못되고 오염된 기복신앙을 양성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앞으로도 계속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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