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칼럼

박성국 목사 - 뻥튀기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4.07 13:55 수정 2026.04.07 13:55

박성국 목사
박성국 목사
얼마 전 교회에 뻥튀기 기계가 들어왔다. 온도를 올리고, 쌀을 넣고 조금 기다리면 “뻥, 뻥” 기계음과 함께 뻥튀기가 하나씩 튀어나온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신기해하고, 어르신들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뻥튀기를 손에 하나씩 들고 돌아다니시며 드신다. 모두가 좋아하는 뻥튀기. 사실 전도용으로 샀지만, 성도님들과 아이들이 더 많이 먹고 있다. 그래도 전도용으로 구매했으니 포장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뽑아낸 뻥튀기를 비닐포장지에 담으니 너무 초라하다. 가만히 보니 크기가 너무 작아서 전도용 비닐봉지에 공간이 많이 남는다. 그렇다고 많이 넣으려니 뻥튀기 양이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말 그대로 ‘뻥’을 치기로 했다. 기계 뒷부분에 보면 압력을 조절하는 부속이 있는데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압력이 높아져서 뻥튀기가 크게 나온다. 그렇다고 쌀이 더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다. 같은 양인데 압력을 올렸기 때문에 두 배 정도 커진 것이다. 이렇게 크게 뽑아서 성도님들에게 드리니 “와! 뻥튀기가 많이 커졌네”라고 좋아하신다. 보통 3-4개 드시던 분들이 1-2개 밖에 드시지 않으신다. 크니까 쌀 양도 많다고 생각하신다. 사실 똑같은 양인데, 뻥을 쳤을 뿐인데, 좀 미안한 마음도 든다. 아무렴 어쩌랴. 모든 성도님들이 ‘커졌다’고 좋아하시고, 전도할 때도 포장지를 꽉 채울 수 있으니, 이런 ‘뻥’은 좀 쳐도 주님께서 이쁘게 봐 주실 것 같다.
‘뻥’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거짓말, 공갈(恐喝)”의 속어로 되어 있다. 가까운 지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사실을 좀 부풀려 말하면 상대방이 ‘뻥치네’라고 한다. 사실 ‘뻥’은 거짓말이라기보다 ‘지나친 표현’으로 보는 것이 맞다. 사실을 부풀리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오가는 요사스러운 말이 ‘뻥’이다. 하지만 ‘뻥’에 이권이 개입되어 있으면 ‘사기죄’로 바뀔 수 있다. 장사하는 사람이 말도 되지 않는 ‘뻥’을 쳐서 많은 돈을 벌 때, 그는 사기죄로 고발당한다. 그런데 대부분 친구들 간의 가벼운 대화에서 ‘뻥’이 좀 있다고 죄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향해서 ‘뻥’을 버리라고 하신다.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뻥의 대가였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고 화려하게 꾸미면서 말씀을 부풀려 전하며 사람들을 선동했다. 표리부동(表裏不同, 마음이 음흉하여 겉과 속이 다름)한 자들이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향해서 ‘뻥’을 버리라고 하셨다. 부풀려 말하지 말고, 진실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고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외식된 모습으로 살면서 멸망의 길로 걸어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월14일 유월절이 끝나자마자 1월15일~21일까지 무교절을 연이어 지킨다. 누룩 없는 빵을 ‘무교병’이라고 하는데 백성들은 이 빵과 함께 쓴 나물을 먹으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 누룩은 빵을 부풀리는 재료인데 너희는 누룩 없는 무교병을 먹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자가 되라고 하신다. 부풀리거나, 외식하지 말고 오직 솔직담백한 무교병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조금 친한데, ‘엄청 친하다’ 말하지 말고, 조금 아는데 ‘다 안다’고 말하지 말고, 조금 사는데 ‘나는 부자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가 말과 행동 속에 누룩을 빼지 않고 뻥을 치면 하나님께 반드시 책망받는다.
오늘도 뻥튀기를 뽑아내면서 뻥이 없는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뻥튀기는 먹어도 언행에는 뻥이 없는, 누룩 없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크리스천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