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복(福)’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복(福)’은 모든 인류의 공통적인 관심이었고 바램이었으며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이다. 이에 대해서 고대로부터 주로 부귀영화와 풍요와 무병장수 및 자손의 번창을 최고의‘복’으로 여겼다. 또한 이러한 기대를 자신이 믿는 종교를 통해 이루고자 했다. 이는 지금도 방법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유사하다. 바로 이런 신앙이 본지에서 계속 논하고 있는‘기복신앙’이다. 하지만 이를 마냥 잘못된 신앙으로 비판과 차원 낮은 신앙으로 여길 것이냐는 것은 오늘날의 또 다른 문제이다. 이에 본 호에서도 계속 여기에 대한 비판과 수용에 대해서 논하면서 종교별로 본 기복신앙의 형태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 종교별로 본 기복신앙의 형태
기복신앙이란 신앙 행위의 주된 목적을 현세적 복을 얻는 데 두는 종교적 태도를 말한다. 이는 건강, 재물, 성공 등 개인의 현실적 욕구 충족에 초점을 맞추는 신앙 형태로서 우리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기복신앙은 주로 전통적인 무속신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으며 여기에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결합하여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다 보니 기복신앙은 개인 중심적 신앙과 현세 지향적 기도와 물질적 축복에 대한 과도한 기대치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종교는 본래의 교리와 본질까지 상실하면서 이런 잘못된 기복신앙을 수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이는 불교·유교·도교·민간신앙, 심지어 우리의 신교, 구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종교별로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무속신앙(shamanism)의 경우: 이에 대해서는 앞선 기고에서 많은 사례로 기술했지만, 잘못된 기복신앙의 원조는 바로 무속신앙이다. 이는 모든 종교의 가장 원시적인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 등의 형태로 고도로 발달 된 현대 사회에서도 제거하기 힘든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면에 대해서는 앞서 많은 분량으로 기술했기 때문에 생략한다.
2) 불교의 경우: 기복적인 종교에 불교가 포함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원론적인 면에서는 전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불교의 근본은 신을 의지하는 타력 종교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 깨닫는 자력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볼 때 부처를 신으로 믿고 복을 비는 기복신앙은 정통 불교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불교가 중국과 한국 등의 대승불교를 통해 토착 무속신앙과 혼합되면서 사찰 내에 산신각을 두거나 밀교적 요소인 주술적 행위들을 통하여 불교의 근본 교리와는 상반된 기복신앙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불교 국가인 캄보디아나 태국 등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3) 유교의 경우: 기복적인 종교와 유교는 근본적으로는 관계가 없다. 기본 경전인 4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 3경(시경, 서경, 역경)에도 기복적인 요소는 없다. 다만 주역(周易)으로 일컬어지는 역경(易經)에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복(占卜)이 포함되다 보니 이를 통하여 유교가 도교와 무속신앙이 혼합하여 잘못된 기복종교가 된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도 보면 유학을 국교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숭유배불 정책으로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풍수지리설이나 무속 행위 등을 철저히 배격했으나 여인들과 일반 백성들을 중심으로 오히려 잘못된 기복신앙이 더 만연하게 되었다.
4) 천주교의 경우: 개신교와 거의 동일하게 천주교도 잘못된 기복신앙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는 배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복은 단순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영원한 행복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상의 가치보다 내세에 누릴 천국의 복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토속적인 무속신앙과의 혼합으로 세속적이고 기복 신앙적 성향이 포함된 것도 사실이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복에 대한 말씀들을 무속 신앙적 관점에서 믿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천주교가 거의 국교화된 필리핀도 더 심한 경우이다.
3. 결론 및 제언
이상과 같이 기복신앙은 특성상 인류의 원시 때부터 시작된 무속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범 세계적이다. 그러다보니 그 이후에 생겨진 모든 종교들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일부의 주장대로 단순하게 이런 신앙을 배격할 수는 없다. 앞선 기고에서 계속 기술한 대로 비판과 수용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하여야 한다. 그래서 종교 본연의 정체성을 바로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앞으로도 계속 논하면서 아울러 우리 기독교의 본질과 기복신앙의 형태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