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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금빛등대 - 이윤민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4.07 13:58 수정 2026.04.07 13:58

< 고난을 지나 부활로 > 2026. 4. 8. 수.

이윤민 목사
이윤민 목사
♢ 봄은 언제나 조용히 온다. 찬 바람이 물러간 자리마다 새싹이 돋는다. 죽은 듯 보이던 가지에도 생명이 움튼다. 자연은 말없이 진리를 증언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생명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 고난주간은 그렇게 우리를 멈춰 세운다. 십자가 앞에 옷깃을 여미게 한다. 십자가 앞에는 순종이 있을 뿐이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
♢ 고난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질문한다. 나는 무엇을 믿고 따르는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부활절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증거다.
♢ 십자가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실패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패배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시작이다. 예수의 길은 거꾸로 가는 길이다.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 24:6). 침묵 속에 감춰졌던 생명이
마침내 돌을 밀어내고 일어선 사건이다. 부활은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상실 속에서도 희망을 선택하는 결단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 우리는 여전히 고난의 현실 속에 산다. 세상은 여전히 불의하고 인간은 여전히 연약하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은 결과가 아니라 약속의 방향을 본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라”(고후 4:17).
♢ 고난주간이 지나갔다고 해서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니다. 부활절을 지켰다고 해서 부활의 삶이 자동으로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신앙은 반복이 아니라 선택이다. 매일의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고 매일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봄이 왔다고 모든 나무가 동시에 꽃을 피우지는 않는다. 각자의 때가 있고, 각자의 과정이 있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아직 겨울의 시간을 지나고 있고 어떤 이는 막 싹을 틔우고 있으며 어떤 이는 이미 꽃을 피우고 있다. “때가 차매 거두리라”(갈 6:9).



♢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이다. 십자가를 지나 부활로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세상의 기준 속에 머물러 있는가. 고난은 끝이 아니다. 부활은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오늘도 유효한 진행형이다.



♢ 고난과 부활을 맞은 이 봄, 우리는 다시 선택의 자리에 선다. 십자가 앞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빈 무덤을 향해 걸어갈 것인가. 신앙은 결국 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고난의 끝에는 언제나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 고난과 부활의 완성은 영생복락(永生福樂)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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