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칼럼

수목(樹木) - 강상선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4.29 14:53 수정 2026.04.29 14:53

강상선 목사
영남총회신학교 교수역임
새생명교회 담임목사

강상선 목사
강상선 목사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불은 입을 벌리고 날아가 계속 번져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경남 산청과 하동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지리산 국립공원까지 퍼져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산 아래의 마을 주민들이 안전지역으로 피신하고 헬기가 공중에서 물을 뿌려 댄다. 소방대원들이 불 갈퀴로 묻혀 있는 불씨를 끄집어낸다. 긴급 뉴스가 계속 이어진다. 지리산 자락에 붙은 불길이 깊은 계곡 바람으로 다른 지역까지 확산이 되었다.

낙엽수로 인해 꺼진 불이 되살아나는 안타까운 소식에 우리는 가슴을 졸였다. 소방청과 국방부가 하나가 되어 공중에서는 항공기가 동원되고, 지상에서는 소방대원들이 불 갈퀴로 낙엽과 부산물을 긁어낸다. 방화선을 구축하여 어려운 골짝의 불을 수작업함으로 인명피해가 있다는 소식에 가족들의 마음은 무너지고, 뉴스를 보는 국민의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까운 나무가 불 속에 타들어 갔다. 푸른 숲이 어느새 검둥이로 변하여 버렸다. 불조심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아직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불씨를 잡기 위해 소방대원들의 노고는 끝나지 않았다. 어느 누가 이렇게 몰고 갔을까? 실수했다고 하기엔 너무도 엄청난 사건이다. 가구가 불타고 산과 밭이 못쓰게 되었다. 주민들의 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무책임한 인간들의 실수를 덮어주어야만 하나? 분초를 다투는 시각에서 정신 못 차리는 한 사람 때문에 애매한 사람이 죽어갔다. 젊은 생명이 사라져갔다. 유가족들의 아픔은 어떻게 할 건가?

우리나라는 산마다 숲이 우거져 있다. 나무들 덕분에 누구든지 숲사이로 걷기만 해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4월 5일 식목일은 전국 각지에서 아이 어른 모두 나와 산으로 나가서 나무를 심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큰 행사로 나무를 심는 이날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땀을 흘렸다. 나무가 멋지게 자라나는 희망으로 열심히 일을 하였다. 나무가 자라 꽃이 피어나고 아름드리 큰 나무로 자라기까지는 수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가는 곳곳마다 자연으로 정화가 잘되어 있어 쉼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고 노래를 불렀던 때가 그 옛날이 되고 말았다. 그 울창한 산림이 산불이 나서 수개월 동안 꺼지지 않는 엄청난 불은, 인간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 살아갈 희망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가옥이 불타 오갈 데 없는 신세로 공공구역에 배치되어 살아가고 있다. 자식처럼 길러온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어느 누가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생각이라도 했을까? 한순간에 나무들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많은 부분에 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나무를 소재로 십자가를 만들어 보는 이마다 주님의 사랑을 확인한다. 길가에 심어진 가로수는 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긴 대나무 막대기로 홍시를 따먹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아주 옛날에 아파트가 생기기 전 주택에서는 변소에 나무를 두 개 걸어 발 받침으로 만든 것들이 새삼스레 떠오르기도 한다. 크고 길게 뻗은 나무는, 집을 지을 때 지붕 위의 석 가래로 사용되었고, 기둥을 세워 집을 지탱하기도 하였다.

영양분이 제대로 미치지 못해 움푹 팬 모양의 나무는 오물을 퍼 올리는 바가지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곁가지로 갈라지는 부분은 콩나물을 기르는 시루로 사용하여, 새벽녘에 잠이 깰 무렵이면 할머니가 콩나물에 물을 끼얹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도 시골에는 나무로 만든 되, 말, 석으로 곡식을 측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부모님께 회초리로 종아리 맞던 어린 시절도 생각이 난다. 대자로 숫자를 배우고 손바닥을 맞기도 하였다. 나무와 나무를 여러 개 뭉쳐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뗏목을 이용하는 모습이랑, 작은 돛단배로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큰 배는 아름다운 곳으로 이동하는 인생 놀이터로 이용하기도 한다. 공부할 때 드러누워 나무 베개를 가슴에 받쳐서 글을 읽던 때가 얼마나 지났는가?

인생길 마지막엔 수의를 입고 나무로 만든 관으로 들어갈 것이다. 교회 강대상과 긴 의자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더해주어 더 은혜롭게 신앙생활을 하기에 충분하다. 더운 날에는 대자리를 펴서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시원함을 더해주어 상쾌한 기분이다. 지금도 시골의 고택에는 나무로 된 문패가 이름을 알려 주고 있다. 이웃집과 긴 막대기 하나로 구분이 되는 모습은 이웃을 믿을 수 있을 만큼 신뢰가 있었음을 말해주기도 하였다. 나무로 만든 큰 대문이 있어 나를 반겨주어서 정겹기도 하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될 땐 방을 따뜻하게 하는 불쏘시개로 이용하여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는 나무의 일생을 회고해 보았다.

우리나라가 못살았던 시절엔 나무를 베어서 밥을 짓고 불을 지펴서 방을 따뜻하게 하여 힘든 시절을 견뎌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옛날 시절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 같다. 시대가 변한 탓일까? 어떻게 회복되어야 할까? 나라가 어려울 때는 옛날을 기억하며 자제하고 엎드려야 빨리 회복이 될 것이다. 나무를 베어서 불을 지피는 옛날을 기억하며 힘을 합치고 뜻을 모아야 한다. 마음을 모아 다시 나무를 심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질 것이고 차츰차츰 생명의 빛이 들어올 것이다. 변함없는 주님의 그 사랑의 빛이 . . .



저작권자 크리스천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