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국가 권력이 교회의 양심과 설교, 예배의 영역까지 규정하려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역사를 돌아보면 공동체를 무너뜨린 것은 총칼이 아니라 ‘법’이었습니다.
총칼은 눈에 보이기에 저항을 부르지만, 법은 ‘공익’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삶의 구조 자체를 바꿉니다. 한 번 제정된 법은 되돌리기 어렵고, 그 영향은 오래 지속됩니다.
최근 논의되는 민법 개정안과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교회와 종교단체에 대한 국가 개입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단체의 운영, 조사, 재산 문제 등에 대한 국가 권한이 확대될 경우, 교회의 자율성과 신앙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로 치부하기보다, 자유민주사회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해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법과 신앙의 경계에서
기독교 신앙은 국가 질서를 존중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권세에 대한 순종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권세는 하나님 아래 있는 ‘위임된 권세’임을 전제합니다.
국가의 역할은 선을 장려하고 악을 억제하는 데 있습니다. 이 본래의 목적을 벗어날 때, 신앙인은 고민하게 됩니다.
성경 사도행전의 선언은 분명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말씀은 무질서를 조장하는 구호가 아니라, 신앙의 최종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는 선언입니다. 교회는 국가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본질과 직결된 문제 앞에서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에스더의 결단이 주는 교훈
성경 에스더서를 보면 한 민족의 운명이 ‘법’에 의해 좌우될 위기에 놓입니다.
하만은 칼이 아니라 왕의 인장이 찍힌 조서를 통해 유다 민족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때 모르드개는 외칩니다.
“네가 이때에 침묵하면…”
에스더는 결단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 결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책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이 민족을 살렸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책임 있는 결단’입니다. 과장된 공포나 무조건적인 분노가 아니라, 사실을 분별하고, 신앙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성숙한 태도입니다.
교회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
교회는 세상과 단절된 공동체가 아닙니다.
동시에 권력에 종속된 기관도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를 말해야 하고,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의 본질을 지켜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확한 이해입니다.
감정이 아니라 사실과 내용을 바르게 알고 판단해야 합니다.
둘째, 책임 있는 참여입니다.
법과 제도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합법적인 절차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모습입니다.
셋째, 기도와 성찰입니다.
교회가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않는다면, 어떤 외적 위기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습니다.
지금,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은 극단적인 대립보다 더 깊은 분별이 필요한 때입니다.
침묵도 답이 아니고, 무분별한 외침도 답이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를 지키되,
사랑으로 말하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국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깨어 있을 것인가.
두려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서 있을 것인가.
한국 교회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위기를 지나왔습니다.
그때마다 교회를 지킨 것은 권력이 아니라, 깨어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진리를 붙들고, 하나님 앞에 서며,
시대를 향해 책임 있게 응답하는 교회.
지금은 침묵할 때가 아니라,
기도하며 깨어 있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