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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성경적 관점에서의 올바른 기독교 영성(123) - 이정희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4.29 15:03 수정 2026.04.29 15:03

영성에 있어서 기복신앙이란?(18) /교회의 기복신앙 비판과 수용의 진단(3)
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원로, 부산 백석신학대학교 겸임교수)

이정희 목사
이정희 목사
1. 들어가는 말
“유령무당 조말례에 속아 150억을 사기당한 재력가 부부”란 기사가 몇 일 전 일간 신문에
기사화된 일이 있었다. 또한 요즈음 넷플릭스 등의 드라마에서 “신이랑 법률사무소”와 “운명전쟁 49”란 프로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모두가 잘못된 기복신앙의 결과로 빚어지고 있는 사기당함과 혹세무민의 각종 매체의 현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이러한 잘못된 기복신앙을 타파하고 올바른 믿음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것인가? 이러한 큰 과제의 명제 앞에서 가장 먼저는, 기복신앙이란 도대체 무엇인지와 왜 각종 종교는 여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이에 대한 실체와 현실을 바로 알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계속 이를 분석하면서 본 호에서는 우리 개신교 안의 기복신앙에 대한 실체와 비판과 수용을 논하고자 한다.

 
2. 개신교에서 본 기복신앙의 형태
지난 호에서 각 종교에 내포되어 있는 기복신앙의 형태에 대해서 논하였다. 특히 불교나 유교의 경우는 근본 교리와 정체성 자체가 기복신앙과는 거리가 먼 종교이지만, 정착 과정에서 가장 오래된 무속신앙과 혼재됨으로서 잘못된 토속적 기복신앙으로 변질되었음을 기술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개신교는 어떠한가? 어떻게 보면 많은 종교 중에서 기복신앙과 가장 유사성이 있는 종교는 도교와 기독교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약에서의 기복신앙에 대한 이해: 성경 전체, 특히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조건절로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선악과는 먹지 말라, 먹으면 죽으리라”(창2:17)는 말씀으로 시작하여“이곳을 떠나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면 복을 주고 창대케 하리라”(창12:1~2)와 야곱의 얍복 강가에서 복을 위한(창 32:26) 기도 등의 말씀은“이렇게 하라 그리하면 이런 복을 줄 것이다. 반면에 그리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란 거의 공식화된 언약의 말씀들이 많다. 또한 신명기 28:4-6의 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역대상 4:9~10절의 야베스의 기도 등은 기복신앙 장이라고 할 정도이다. 이는 또한 앞서의 기술대로 조건으로 말씀하시는 현세의 복을 포함한 내용들이다. 이로 볼 때 구약시대는 신약시대처럼 구체적 영혼 구원과 내적인 복의 개념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현세의 복에 대한 소망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 신약에서의 기복신앙에 대한 이해: 구약에 비해 신약의 내용은 현세의 복에 대한 내용보다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영적인 복을 더 강조하는 편이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평강과 기쁨의 은혜에 더 가치를 두며 본질적인 구원을 더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세의 복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앞선 기고에서 기술한 적이 있지만, 주기도문의 네 번째 기도 제목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는 영의 양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육신의 필요를 위한 기도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치유와 기적을 기복신앙으로 매도하는 경우도 많지만, 예수님의 3대 사역 중 하나가 치유(마태 4:23)이기도 하며, 병든 자들을 위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약 5:14)는 말씀과 기타 현세의 고통과 어려움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의 기복신앙으로 매도하는 것도 잘못된 일일 것이다.

 
3. 현재 기복신앙에 대한 개신교의 판단과 현실과 결론 및 제언
여기에 대해서는 몇 주 전의 기고에서 기술한 바 있지만, 현재로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한국 교회사적으로 보면,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이에 편승한 이단들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고, 오순절 신앙의 삼박자 구원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논란으로 인한 기복신앙에 대한 우려와 무조건적인 오해와 편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복에 대한 설교만 해도 기복신앙으로 비판받는 경향들도 있다.

또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어떤 타 종교보다 우리 기독교가 잘못된 기복신앙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 주 전의 기고의 내용대로 근원적으로나 신앙 체계의 유사성, 영혼과 영적 세계의 존재를 믿는 믿음의 유사성과 중보자(무속인) 역할의 유사성 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복을 비는 것 자체를 한국에서는 “기복신앙”으로, 미국에서는“'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으로 매도하고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관점에서 제언하는 바는 앞선 기고에서 계속 기술한 대로 비판과 수용을 제대로 하면서 우리 기독교, 특히 개신교 본연의 정체성을 올바로 파악하고“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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