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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남자로 유아교육과에 진학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더구나 늦깎이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대학 생활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강의실 안에서 느껴지는 낯선 시선들, 현실적인 한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막함은 생각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다행히 입학 당시에는 몇몇 남학생이 함께 있었지만, 졸업과 동시에 모두 각자의 길로 흩어졌고 결국 나는 홀로 남게 되었다.
졸업 후에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곧바로 교사의 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서른다섯의 기혼 남성을 선뜻 받아들이는 유치원은 많지 않았다. 이력서를 내도 쉽게 연락이 오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그때 내가 붙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다.
길이 보이지 않을수록 더 깊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덕도의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왜 이 길을 걷게 하셨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어느 날, 잠시 쉬는 시간에 무심코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교수님이었다. 그 전화는 곧 김해의 한 유치원으로 이어졌고, 나는 기적처럼 교사로 임용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단순한 취업이 아니라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가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쉬는 날이면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싶을 만큼 그 시간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의 웃음과 순수한 눈빛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늘 현재에 머물지 않는다. 우연한 계기로 방문하게 된 또 다른 유치원을 보며 새로운 동경이 생겼고, 결국 나는 새로운 환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적응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미 오랜 시간 함께해 온 교사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일은 쉽지 않았고, 낯선 분위기 속에서 다시 방향을 고민하게 되었다.
바로 그 시기였다.
우연히 손에 쥔 작은 열매 하나가 내 삶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호그플럼’이라 불리는 열매의 씨앗으로 작은 오리 한 마리를 만들어 본 것이 시작이었다. 그것을 본 어머니께서 무심히 던진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난다.
“잘 만들었네. 다른 것도 한번 만들어 봐라.”
그날 이후 나는 자연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길가에 떨어진 열매와 나뭇가지, 껍질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내 눈에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모양의 열매와 나무 조각들이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이어졌고, 평범한 자연은 새로운 이야기를 품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만들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디어들이 번뜩이듯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나무껍질을 일일이 붙여 표현하던 무늬를 펜으로 직접 그려 넣으며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나만의 방식이 만들어져 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처럼 시작된 작업이었지만, 어느새 삶의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수업으로 이어졌고, 도서관 강의와 전시회로도 연결되었다. 대학에서는 후배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게 되었고, 강의 요청을 받아 12주 과정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해오던 작업이 단순한 만들기가 아니라 사람들과 자연, 그리고 삶을 연결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이후 작품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동신작’이라는 채널을 만들어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 역시 내게는 소중한 과정이었다. 기록은 곧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했고, 내가 걸어온 길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했다.
지금 나는 이 작업을 ‘네이처아트(Nature Art)’라고 부른다. 단순한 공예라는 이름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연을 재료로 사용하지만, 그 안에는 시간의 흔적과 손의 기억,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버려진 열매 하나에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와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작업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최근에는 아내가 준비한 캘리그라피 공방의 한 공간을 함께 꾸미며 작품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상자 속에 머물러 있던 작품들이 이제는 사람들과 만나고,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작품을 보며 웃고, 누군가는 위로를 얻는다. 그렇게 작은 열매 하나에서 시작된 작업은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잠시 멈춰 있던 작업들을 다시 이어가려 한다. 작품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책으로 남기며,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전시와 강의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발견하고 싶다.
돌아보면 내 삶의 시작은 언제나 기도였다. 길이 막힐 때마다 하나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유치원 교사의 길도, 자연공예의 길도 모두 내가 계획했던 인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준비된 재료들 속에서 조금씩 내 삶을 빚어가고 계셨다.
나는 오늘도 자연을 만지고 다듬으며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빚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