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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동행

경남성시화 조찬기도회 설교 - 이성구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0:49 수정 2026.01.15 10:49

선지자 있음을 알게 하라
이성구 목사

이성구 목사
이성구 목사
12월5일 조찬설교
선지자 있음을 알게 하라
이성구 목사
경남성시화 공동본부장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회장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키니 바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지 그들 가운데애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애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에스겔 2:1~7)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하는 자가 선지자이다. 에스겔은 특이한 선지자이다, 그 아버지는 제사장이었고 에스겔도 제사장의 자손이며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가 있었던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수천킬로 떨어진 바벨론 그발강 가에 처량하게 앉아 자신의 포로된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에게 여호와께서 영광된 모습으로 임하셨다. 그로 하여금 처연하게 앉아있지 말고 일어서라 말씀하시고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할 것을 명하셨다. 그의 청중은 누군가. 말씀을 듣지 않는, 얼굴이 뻔뻔하고 반란하며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이다. 무슨 말을 해도 결코 그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는 딱딱한 콘크리트같은 굳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에게 누구를 보낼 것인가. 에스겔이 택함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셔서 그 자리로 그 지위로 부르시는 것이다. 그 부르심의 필요가 있는 곳이 우리가 있을 자리이다. 나를 필요로 하여 부르심을 받으면 그것이 선지자, 제사장, 목회자, 성도의 자리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 교인들도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뻔뻔하고 목이 곧으며 반란을 꾀하며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주일날 예배때 맨 앞자리에 앉은 장로들은 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설교를 들어도 그 말씀이 그 말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설교하기도 전에 조는 교인들은 또 무언가. 설교를 들을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설교자는 설교할 마음이 나겠는가. 설교자의 기를 죽이는 것이다.

에스겔이 들은 말씀은 신바람이 나는 말씀이 아니라 절망중에 있는 상황에 절망을 더하는 말씀이다. 너는 가서 전해라. 패역하고 배반하는 족속에게 말하라 듣든지 아니 듣는지 그들에게 내 말로 고할지어다.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가. 그들이 좋아하는 말씀이 아니라 듣기 싫어하는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지금 처해있는 포로 생활보다 더한 상황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듣기 좋아할 사람은 없다.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이 듣지 아니할 것을 예상하는 것이다. 위로와 격려하고 사랑하고 북돋우는 말씀이 아니라 듣기 싫어하는 말씀이기에 더욱 그렇다. 포로 상황에 와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반하고 패역한 자들이다. 얼굴이 뻔뻔한 자들이다. 반란하는 자들이다. ‘하나님! 우리를 복된 자, 복을 주는 자들이라 하시더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얼굴을 하나님께 뻣뻣하게 들고 대드는 것이다. 에스겔은 말씀을 전하면서 왜 고통당할 수 밖에 없는가.

오늘 본문 5절의 말씀, “그들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중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에스겔처럼 오늘 목회자들은 제사장으로 말씀을 가르치며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외쳐야 하는 것이다. 왜 우리 목회자들이 말씀을 잘 듣지 아니 듣든지 청중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전해야 하는가.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우리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도록, 하나님 앞에 변명 못하도록 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었다고 변명할 수 없도록 패역하고 반란하고 뻔뻔한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다.
패역한 그들 중에 선지자가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왜 우리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 교회가 마땅히 외쳐야 할 공의와 정의의 말씀, 심판의 말씀을 외치지 않은 결과이다. 왜 우리 목회자들이 권력자들, 사람들을 그렇게 두려워하는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말을 하면 성도들이 나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이 패역한 시대에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부르심 받은 것을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분명하게 외쳐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그 존재 자체로서 이 나라와 교회를 잘 세워나갈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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