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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동행

경남성시화 조찬기도회 설교 - 김종준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1:28 수정 2026.01.15 11:28

여호와께서 의로우시도다
김종준 목사

김종준 목사
김종준 목사
7월 4일 조찬설교
여호와께서 의로우시도다
김종준 목사
경남성시화 상임회장
중리 홍대교회

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근심을 볼찌어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19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 저희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 20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예레미야 1:18-20)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 우리 모두는 기도했고 어떤 분들은 금식까지 했지만 우리의 바라는 바가 아닌 결과로 끝이 났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때다. 일각에서는 투표의 부정성을 문제시하려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고, 미국이 뭔가 변수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들도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
첫째 그것이 민주주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로 결정된다. 결정되기 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결정되고 나면 소수는 다수에 승복해야 하고 다수는 소수를 품어야 한다. 둘째 그것이 성경의 정신이다. 로마서 13장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4절에,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라 하셨다. 우리는 사역자가 교회에만 있는 줄 알지만 성경은 그들도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하신다. 세 번째, 그것이 기도의 원칙이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시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와 달랐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네 번째,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로는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과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 결과도 하나님이 주관하신 것이다. 그래서 수용하자니 앞으로 전개될 미래가 걱정된다. 기류는 반 성경적, 반 기독교적으로 흘러갈 것이 분명하다. 나는 우리가 맞이할 날들이 마치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의 환경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오늘 분문을 통해 그들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그들은 먼 이국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본 예레미야 애가는 유다 패망후 예루살렘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예례미야는 한때 영광스럽고 위대했던 예루살렘 성이 황폐하게 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비탄에 젖어 울고 있다. 1절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3절에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고’, 7절에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2절, 16절,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흘렀고’,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나라는 망하고 성전은 불탔고, 성은 함락되었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그야말로 비참했다.
시편 137편에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상황을 볼 수 있다. 1-6절에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보낸 사람들도 울었고 끌려간 사람들도 울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이 할수 있는 것이 우는 것 뿐 더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들이 잘한 것은 회개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간 것은 먼저 살던 주민들이 더러운 죄를 지어 그 악으로 그들을 벌하고 땅이 그들을 토했던 것 같이 지금 유다 민족도 그들과 마찬가지 이유로 포로로 끌려갔고, 사무엘하 7장 14절의 말씀대로 ‘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이다. 예레미야는 15절에 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해야 할 것은 회개뿐이었는데 그들은 회개했다. 그들이 포로생활 중 어떤 각오를 했는지 그 후의 삶을 보면 알수 있는데, 포로 생활후 성전 재건과 율법 준수에 힘썼던 것을 보면 그들이 망한 이유를 분명히 깨닫고 회개했음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그들이 잘한 것은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이다. 다니엘이 포로 생활의 기한이 70년임을 알게 되었고(다니엘9:1), 회복을 위해 기도하다가 일곱 이레 안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포로 생활 이후가 다른 점은 율법사 등장과 메시야 대망이다. 포로 생활을 통해 율법이 회복되었고, 메시야 대망까지 더해졌다.
성경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신다. 지금의 좌절이 미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그러기 위해 지금의 상황이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지역과 진영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는, 세상의 빛이기보다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는 우리의 초라한 모습에 대한 결말이며, 말로는 우리나라의 선교사 숫자가 세계 2위라 하고, 선교하기에 적합한 조건이라느니 다음 세대가 어쩌느니 하지만 말이다.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현실을 놓고 최소한 울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후에 지금의 원인이 무엇인지 집어 보고 참으로 회개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한다면 오히려 지금이 더 나은 미래로 나가는 기회가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유대인들을 바벨론으로 보내셔서 새로운 역군을 만들어 구속사를 이끌어 가신 하나님은 잘못이 없다. 하나님은 의로우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유대인들처럼 지금의 불편한 현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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