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조찬설교
하나님나라의 저항운동
신지균 목사
경남성시화 사무총장
큰나라교회
다니엘 1:1-9
레지스탕스, 저항의 역사 3.1운동이 우리 민족의 거룩한 외침이었다면, 프랑스에는 ‘레지스탕스’가 있었습니다.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무릎 꿇지 말라”는 드골의 외침은 시민들의 은밀한 저항을 일으켰고, 결국 자유를 회복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저항이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레지스탕스였습니다.
1.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거룩한 저항운동
성경에도 거룩한 레지스탕스 저항운동이 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고대 근동에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바벨론의 유다 정복에 의해 1차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청년 4명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엘리트교육을 받은 자로서 조국이 빛을 잃어갈 때, 지배국의 왕궁에서 충분히 출세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주어졌음에 불구하고 이 특혜를 의지하지 않고 조국 유다의 왕과 대신과 백성들이 하지 못한 거룩한 저항운동을 음식 문제로 펼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말은 신의 말로써 어느 누구도 저항 할 수 없고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바벨론은 매우 다문화적이고 다인종적인 복합국가였기에 피정복민 엘리트를 양성해서 피정복민 통치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으로 다니엘과 세친구들을 왕국 교육을 받는 장학생과 같기에 저항할 수 없는 위치였다는 점에서 보면 이것은 대단한 저항이었고 반역이었습니다. 왕의 명령, 신하의 순종은 그 자체가 훈련프로그램입니다. 포로민들이 순종부터 안 한다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왕의 명령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왕이 주는 진미를 거절한 것은 왕이 결정한 식탁이고 짜놓은 프로그램에 대한 거부운동입니다. 왜 이렇게 항거합니까? 유다나라는 왕부터 시작하여 온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에게 절하고 이방 문화에 젖어서 살았습니다. 반면 지금 이 젊은 청년들은 정복국가의 왕 앞에서 이방 문화에 항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사상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까?
2. 하나님나라 개념이 바로 서 있었다.
그것은 여호와를 믿는 나라는 패했다고 해도 결코 하나님은 만유의 주요 만국의 왕이라는 사실과 결코 하나님나라는 이 땅의 나라에 복속할 수 없다는 믿음과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유다가 바벨론에게 졌고 그 결과 고대전쟁은 신들의 전쟁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듯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져온 그릇들이 바벨론의 므로닥 신전 보물창고에 전리품처럼 취급받는다 해도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왕이라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다니엘 1장 2절에서 성경은 이미 답을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넘기셨다”는 표현으로 다니엘서를 열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패했지만 우리는 결코 세상 왕의 요구보다도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겠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나라 가치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믿음의 시작이 다니엘서의 첫 장에 장식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스라엘이라는 땅을 넘어서 세상 어디든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에게서 세워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나라가 그 곳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있는 곳에서 세상이 하나님의 뜻과 대치되는 것을 요구할 때 그곳에서 홀로 외롭게 진리로 저항하고 하나님나라로 서 있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누가 출세의 자리에서 자기를 출세시킬 권력이 있는 자가 내미는 기름진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할 수 있습니까? 김회권 목사는 이 바벨론의 산해진미를 먹는 것은 십계명의 1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의 종교와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확신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3. 하나님의 통치는 땅이 아니라 사람이다.
간이식을 받은 제 친구 목사는 수술 이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화되었습니다. 마치 바벨론 한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식되자, 그 중심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의미심장한 것은, 유다 왕들과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했으며, 반대로 다니엘과 세 친구는 적국 바벨론의 심장부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나라를 꽃피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자기 땅에서 하나님 없이 살던 유다와 달리, 하나님이 없을 것만 같은 바벨론 왕궁에서조차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실현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나라가 땅에 국한되지 않고, 믿음의 사람을 통해 세워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가 망했어도 하나님의 통치는 여전히 우주적이며, 다니엘과 친구들의 거룩한 저항은 단지 땅을 전복시키는 정치적 행위가 아닌,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통치를 바벨론 한복판에서 증언한 신앙의 운동이었습니다. 따라서 다니엘서는 타국에 끌려간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바벨론과 세계 열방이 결국 하나님의 통치 아래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선언이며, 이 책의 핵심은 “하나님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라면, 세상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진리를 향한 거룩한 레지스탕스로 살아가야 할 사명이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세상 나라 넘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권자임을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세상나라(불신세계), 왕권도 하나님이 다스리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면 그 이유는 우리에게서 찾고 답은 하나님에서 찾아야 합니다. 세상 왕의 손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전 기물(종교적 물체)이 하나님을 대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에도 갇히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다니엘서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 나라가 결국 승리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어디에 붙어 있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