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조찬설교
놋 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김우태 목사
경남성시화 대표본부장
동창원영은교회
민수기 21장 4~9절
연못에 두 마리의 붕어가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습니다. 붕어 한 마리가 불평을 했습니다. 욕심쟁이였습니다. “저 놈만 없으면 이 연못은 모두 내 것인데...” 그래서 어느 날 다른 붕어를 물어뜯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붕어가 썩으면서 물이 악취를 났습니다. 오염됐습니다. 그 붕어도 같이 죽고 말았습니다. 불평은 남도 죽이고, 결국 자기도 죽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불평입니다. 하나님께서 불평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본문은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아직 광야 환경에 적응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만나만 먹는 것도 싫고, 텐트에서 날마다 지내는 것이 지겨웠습니다. 물도 흡족하지 못 했습니다. 어디를 보나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원망을 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5)
하나님께서는 이런 원망과 불평을 불편하게 여기셨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 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불 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냈습니다. 불 뱀들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했습니다. 수많은자들이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면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불 뱀이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 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6) 2. 불 뱀이 이스라엘 백성을 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물게 했습니다.(6)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솔로몬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잠언 26:2)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피조물들을 다 주관하시고 명령하실 수 있음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섭리만 있을 뿐입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손길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역사 속에는 구속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판넨버그라는 신학자가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올 가을에 풍년인지! 흉년인지! 먼저 아는 동물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일까요? 멧돼지입니다. 멧돼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도토리입니다. 멧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으면 도토리를 비롯한 모든 농작물들이 풍년들 징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멧돼지가 새끼를 적게 나면 흉년들 징조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 뱀에 물려 죽으면서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7) 모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8) 모세가 그렇게 했습니다.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장대에 매달린 놋 뱀을 보는 자들은 다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까짓 것을 본다고 무슨 병이 낫느냐고 믿지 않고 보지 않았던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놋 뱀이 달린 장대는 바로 십자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놋 뱀에 대한 예수님께서 해석 해 주시는데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 3:14)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놋 뱀을 해석하시면서 성경에서 가장 귀중한 진리의 말씀인 요한복음 3장 16절로 연결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장대에 달린 놋 뱀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해석을 바울은 더 피부에 와 닿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놋 뱀에 대한 바울의 해석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나)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나)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불 뱀이 저주받은 것은 예수님이 우리(나) 대신 십자가에서 저주받으신 것으로 바울은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 뱀을 보는 사람마다 고침 받은 것은, 예수 십자가를 보는 자마다 생명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불 뱀에 물린 자들은 놋 뱀을 보면 깨끗이 낳아 살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불 뱀에 물렸어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놋 뱀이 있기 때문입니다.
※ 실패의 불 뱀에 물렸어도.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실패하지 않고 성공의 길로 가는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바람을 맞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는 배는 한 척도 없습니다. 아예 바람을 예상하고 가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오르막 길 없는, 내리 막 길은 없습니다. 일 없는 상 없고, 상 없는 일 없습니다. 인생길에는 골목, 골목마다 수많은 실패의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처리능력입니다. 실패 없이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 후에 성공한 자가 더욱 돋보이는 법입니다. 실패는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실패했어도 그 실패에 영향을 받지 말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 뱀만 보지 말고, 놋 뱀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두운 밤만 쳐다보지 말고, 밝은 낮도 보아야 합니다. 사막만 보지 말고, 오아시스도 보아야 합니다. 오늘만 보지 말고, 내일도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아픔이 있을 때 아픔만 보지 않고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보고 결코 실망하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욥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욥은 물질을 다 잃고 건강을 다 잃고 더구나 자녀들까지 다 잃은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불 뱀에 물렸어도 놋 뱀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정확하게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8-10). 아픔과 실패가 종종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영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승리할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