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9일(금) 경남성시화(845회) 설교 강석수 목사
성경: 히 11:1-4
제목: 죽었으나 말하는 사람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이란 단어가 20여 번이나 나오며 믿음으로 살았던 신앙 위인들이 15명이 열거되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 나온 사람은 아담의 둘째 아들인 가인의 아우 아벨입니다. 11장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라는 말씀을 따라 이 시간에 함께 은혜를 나누려는 말씀의 제목은 “죽었으나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살아생전에 많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말하는 사람은 없으며 죽기 전에 남기는 말을 유언 또는 유훈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운명 직전에 남긴 부모님의 말씀이나 내가 존경하는 분이 남긴 말들을 기억하고 마음으로 회상합니다. 오늘 우리는 유훈도 아니며 유언도 아닌 죽은 지 오래된 아벨의 말을 상고하면서 같이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몸은 죽었으나 영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말을 들읍시다”
아벨이 몇 세에 죽었는지 언제 죽었는지를 알 수 없으니 죽은 지 10년, 100년, 1000년도 더 되며 아마도 5000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숨도 쉬지 못하며 음식도 먹지 못하고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데 어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죽어서나 지금도 말하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벨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모든 사람도 믿음 안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도 좋은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속담에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믿음 밖에서 죽은 사람들도 좋은 말을 남긴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벨이 죽은 후에 한 말과 믿음 밖에서 죽은 자의 말은 같을 수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 죽은 자의 말은 생명이 있고 믿음 밖에서 죽은 자의 말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믿음 밖에서 죽은 사람의 좋은 교훈, 윤리, 도덕, 철학, 기술, 정치, 경제 등 위대한 훌륭한 말들이 있지만, 영적 생명이 없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영적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죽은 다음에 한 말들은 영적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육의 생명도 천하보다 귀한데 하물며 영적 생명이랴. 생명 없는 말이 아무리 위대하게 들린다 해도 생명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둘째, 아벨은 죽었으나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형 가인으로부터 죽임을 당했으나 그 믿음으로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혀와 입으로 말하지 않고 믿음으로 말하고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있는 믿음으로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깨닫습니다. “말보다 믿음이다.” 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 없는 열 마디 말보다 믿음 있는 한 마디가 더 중요합니다. 아벨이 남긴 말은 사실상 없고 믿음으로 제사 드린 사실 밖에 남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으로…. 란 말이 20여 번 나옵니다. 에녹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이나 야곱도 모두 믿음으로, 믿음으로.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말로만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이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아벨은 말을 남긴 것이 아니라 행함을 남겼고 말을 남긴 것이 아니라 믿음을 남겼습니다.
셋째, 아벨은 죽었으나 산 제사로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 4절에 보면 두 제사가 서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가인의 제사, 하나는 아벨의 제사, 하나는 하나님이 받으신 제사, 하나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 하나는 믿음으로 드린 제사, 하나는 믿음으로 드리지 않은 제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와 받지 않으시는 제사는 어떤 제사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제물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동물 제물은 받으시고 식물 제물은 받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레2:1-18) 하나님은 식물성 제물도 제물로 드리게 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제물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우선하십니다.
제물도 중요하지만,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제물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부터 점검하시고 다음에 제물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그래서 가인을 받지 않으시고 따라서 가인이 드린 제물도 받지 않으셨고, 아벨을 먼저 받으시고 따라서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창4:4-5)
셋째,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믿음으로 드린 제사입니다.
제물보다 믿음이며 사람보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시고 제사를 받으시고 받지 않으심보다 믿음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부족해도 믿음 있으면 받으시고, 사람 보기에는 좋게 보여도 믿음 없으면 그 제사도 받지 않으십니다.
넷째,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더 나은 제사입니다.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하십니다. 사람마다 같은 값이면 더 나은 것을 취합니다. 생선, 채소, 과일, 옷, 가재도구, 신발도 같은 값이면 더 나은 것을 갖듯이 예배도 더 나은 예배를 드려야 한다.
물품은 나에게 더 나은 것을 취하듯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더 좋아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숙고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우리는 2026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에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벨의 제사처럼 더 나은 제사, 더 성숙한 예배, 더 거룩한 예배, 더 경건된 예배 회복 운동을 합시다.
과거에 한국교회가 소수의 적은 수로서 믿음과 예배로 세상을 변화시켰던 그때를 회상하며 아벨의 예배를 다시 회복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