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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3:48 수정 2026.01.15 13:48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① 맹의순과 이규호 연재 9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양재한 장로
양재한 장로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① 맹의순과 이규호 연재 9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문학박사, 전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현 재단법인 창원YMCA 법인이사장


3. 십자가의 길, 맹의순
3) 목회자 맹의순의 삶 – 계속
배명준 남대문교회 담임목사는 억울하게 포로로 붙잡힌 맹의순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후 맹의순을 면회하였다. 그런데 맹의순은 수용소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목사님! 저는 이 수용소에서 나가지 않겠습니다. 왜? 그게 무슨 소리요? 저는 여기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떠날 수가 없다니? 이 수용소 안에 이미 교회가 세워졌고 그 교회와 교회 식구들, 환자들 그리고 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두고서 저 혼자 떠날 수가 없습니다.”
당시 배명준 목사와 면회를 함께한 사람은 김순봉 대위와 2-3명의 중등부 제자들이었다. 그 제자 중 한 사람인 정창원은 이렇게 증언한다. “하나님께서 분명 자기를 광야교회로 인도하신 큰 뜻이 계셨을 것이므로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진지한 모습으로 얘기했습니다.”
맹의순의 삶이 세상에 드러나 다시 조명받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가 포로수용소에서 쓴 약 3달 동안의 일기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일기는 2016년 10월 광야교회 전도사로 섬겼던 이원식이 남대문교회에 기증하면서 남대문교회는 이 일기를 저본으로 2017년 7월 『십자가의 길』이란 단행본을 출간하였고, 김시규도 맹의순이 쓴 일기를 원자료로 활용해 2018년 2월 석사학위 논문을 완성하였다.
이원식은 그가 맹의순의 일기를 보관하게 된 경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포로석방 후 어느 날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회심자가 자신에게 찾아와 맹의순의 일기를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그 회심자는 맹의순이 쓴 일기를 모아 엮었고 겉표지에 “20세기의 성인 고 맹의순 선생의 일기”라고 적고, 제목을 “성두기(聖斗記)”라 붙였다는 것이다. 불교신자가 맹의순의 삶을 보고 회심해 이렇게 한 것만 봐도 맹의순의 삶은 앎과 삶이 일치된 사람, 무엇보다 예수님을 닮은 삶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예수를 전한 사람임을 알수 있다.
맹의순이 순직한 날은 1952년 8월11일이다. 순직할 당시 상황을 정연희의 장편실화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에서는 사실을 바탕으로 독자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극화한 측면이 있으나, 맹의순의 십자가 길을 가슴으로 담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사례는 없어 보인다.
맹의순은 1952년 8월12일 거제리포로수용소에서 석방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석방되기 하루 전인 1952년 8월11일 새벽에도 중공군 포로들을 찾아갔다. 여느 때와 변함없이 맹의순은 물통과 성경책, 그리고 번역한 찬송가를 쓴 종이 한 묶음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는 인사를 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침대 머리에 꿇어앉아 그들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중환자들의 얼굴과 발을 씻겨주는 일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하였다. 그는 환자들을 씻기면서 찬송가를 나직하게 불렀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계심 바라네. ... (이어 시편 23편을 중국어로 읽어주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를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
맹의순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반복하면서 마지막 환자를 씻긴 물통과 대야를 들고 일어났다. 그는 남겨두고 가는 중공군 포로들을 부탁하는 듯 높은 곳을 바라보던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십자가의 길’을 다한 것이다. 1952년 8월11일 새벽 맹의순은 죽기까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다 순직하였다. 이 땅에서 그는 26년8개월 짧은 생을 살면서 ‘믿음의 역사(役事)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살전1:3)를 다하고 영원한 참된 안식을 얻었다.
맹의순의 장례추도예배는 그의 사망 11일 후인 1952년 8월22일 부산 보수동교회(박재봉 목사 시무)에서 거행되었다. 박재봉 목사는 맹의순의 친구 박재훈(토론토 큰빛교회 목사)의 친형이다. 김시규 논문에 의하면 김순봉 대위가 맹의순을 근처 망우리산에 정성껏 모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원식의 증언에 의하면 망우리산에 안장된 묘를 김순봉 대위가 다른 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이는 묘를 관리할 유가족이 없는 맹의순을 위한 배려차원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편 남대문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103회 총회(2018.9.13)에서 「순교·순직자심사위원회」의 보고를 받고 맹의순을 순직자로 추서하기로 결정했으며, 2019년 2월10일 남대문교회에서 순직자기념감사예배를 드렸다(남대문교회 역사자료관, ‘맹의순’ 참조). 맹의순이 졸업한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에서는 맹의순 순직70주기를 맞아 2022년 전반기 졸업식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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