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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① 맹의순과 이규호 연재 6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4:04 수정 2026.01.15 14:04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① 맹의순과 이규호 연재 6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양재한 목사
양재한 목사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① 맹의순과 이규호 연재 6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문학박사, 전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현 재단법인 창원YMCA 법인이사장

2. 한국전쟁 시절 맹의순과 이규호

3) 헤어진 후: 이규호
이규호는 전쟁 상황이 다소 안정되어 갈 즈음 할아버지가 계신 ‘옥종’에서의 피란생활을 끝내고 진주 본가로 돌아온다. 이어 병역문제도 해결할 겸 미군 제일해병항공사단 통역으로 종군하게 된다. 당시 김해비행장이 미군 제일해병항공사단 기지여서 그곳에서 복무한 것이다.
통역으로 종군할 당시 서울소재 대부분 대학들은 부산에 피란와 개강을 하고 있었는데, 조선신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규호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있었는데, 졸업 후 목회자의 길로 나아갈지 아니면 또 다른 길로 나아갈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 문제 상담을 위해 강성갑 목사에게 쓴 1951년 5월 30일자 편지가 있다. 규호는 편지를 썼는데 왜 보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마 강성갑 목사가 1950년 8월 2일 순교했으므로 편지를 쓴 시점이 순교 후 9개월이나 지난 후라 조선신학교 졸업을 앞둔 혼자만의 넋두리인지도 모른다.
강○○ 목사님,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사무실이 비교적 조용합니다. ...요즘 내 머리를 한시도 떠나지 않는 괴로움이 가만가만히 나의 가슴을 졸라대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누구에겐가 쓰야할 이 편지를 강 목사님에게 씁니다. ... 불가불 나는 산속 서당에서 좋아하는 책들과 성서를 친구 삼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때 나의 사회적인 젊은 정열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었으며 기독교의 파수꾼으로서의 나 자신을 장사해 버렸습니다. 성서는 나에게 거짓 없이 살라고 가르쳤으며 인간의 그날그날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길이 알려진 광명의 길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길 없는 광야에 끌고 가서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을 없애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지옥이라면 지옥의 쓴맛에 끌리는 것이겠지요. ... 나는 다시 다시 조심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결코 기독교의 편은 아닐 것이라고, 그는 조그마한 거짓하고도 타협하시지 않았으니까. ...정말 앞길이 어둡습니다. ... 나 자신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면 참으로 맥이 빠집니다(이규호, ‘인간다운, 너무나 인간다운’, 142-144).
이규호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신학공부에 점차 흥미를 잃어가는데, 전쟁 중에 ‘사랑의 공동체가 아닌 인간의 온갖 저속한 욕심에 의한 분쟁의 터전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보고 그는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또 다른 길을 모색한다. 그 와중에 그가 통역으로 일했던 김해비행장의 미국 군목 주선으로 UC Berkeley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을 떠난다. 늑막염을 앓은 적이 있던 규호는 신체검사에서 그의 외쪽 가슴에 나타난 그림자가 문제되어 입학에 실패하고 소외감과 좌절감을 안고 화물선을 타고 부산으로 귀향하였다.
UC Berkeley 대학교 입학에 실패한 규호는 피란시절 맹의순과 함께 의지하려고 했던 강성갑 목사가 설립한 한얼중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독일어 교사로 근무한다. 이때 조향록 목사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 조향록 목사는 한얼중고등학교 교장직 사표를 1954년 봄에 제출했는데, 그의 글에서 ‘군복무를 마친 이규호가 곧장 달려와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규호의 한얼중고등학교 재직기간은 종전 후 미군 제일해병항공사단에서 제대하고 미국 UC Berkeley 대학교 입학에 실패한 후인 1953년 후반기부터 한얼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시작해 1958년 독일 튀빙겐대학교 입학하기 전인 1957년까지 만4년 동안 재직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 사진은 1953년 성탄절 때 찍은 단체사진으로 규호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4] 1953년 크리스마스 단체사진. 앞줄 왼쪽 첫 번째가 이규호(사진: 심상호 장로 제공)

1954년 5월 27일 한얼중학교 교정에서 함태영 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강성갑 목사 추모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이때 학생들과 함께 불렀던 추모합창곡인 「스승의 길」의 가사는 교사로 재직 중이던 이규호가, 곡은 이삼은이 작곡하였다.
이규호는 그가 한얼중고등학교에 재직한 4년 동안 신학에서 철학으로 지향점을 바꾸어 새 삶 준비를 위해 향학열을 불태운 시기였다고 회상하고 있다.(이규호, ‘철학의 길을 찾아서’,154). 이어 1958년 독일 튀빙겐대학교에 입학하여 1962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면서 그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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