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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금빛등대 - 가장 낮은 곳에 임한 빛과 소망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4:05 수정 2026.01.15 14:05

가장 낮은 곳에 임한 빛과 소망
이윤민 목사

이윤민 목사
이윤민 목사
가장 낮은 곳에 임한 빛과 소망
이윤민 목사
금빛교회

해마다 12월이 되면 거리에는 어김없이 캐럴이 흐르고, 상점의 쇼윈도우에는 화려한 장식과 반짝이는 불빛이 걸린다. 사람들은 서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건네며 한 해의 끝자락을 정리한다. 그러나 정작 성탄절이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탄의 참 의미를 놓치기는 성속(聖俗) 모두 마찬가지다.
성탄은 이제 하나의 휴일이 되었고, 이벤트가 되었으며, 소비의 계절이 되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조차도 바쁜 일정과 형식적인 예배 속에서 ‘왜 이날을 기뻐하는지’를 잊고 지나가곤 한다. 성탄의 의미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 신앙의 수준이다.
성경은 성탄의 본질을 매우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으로 전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복음 1장 14절)”. 이는 단순한 탄생 이야기가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선언이다. 예수는 왕궁이 아닌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첫 방문객은 권력자가 아니라 들판의 목자들이었다. 세상의 관점을 갈아엎는 사건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세상의 질서와 정반대임을 보여준다. 강함이 아니라 연약함으로, 높음이 아니라 낮음으로, 지배가 아니라 섬김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성탄은 성육신(Incarnation)의 실현이다. 또한 지극한 낮아짐, 케노시스(Kenosis)의 실현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지극한 하나님 사랑의 실현이다.
성탄은 낭만적인 신화가 아니라 인간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다. 불의와 탐욕, 경쟁과 차별로 얼룩진 세상 한복판에 하나님은 심판이 아닌 ‘임마누엘’, 곧 함께하심으로 들어오셨다. “그가 자기 백성의 죄에서 그들을 구원할 자 (마태복음 1장 21절)”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성탄은 죄와 단절된 도피가 아니라 죄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신 구원의 사건이다.
그래서 성탄은 인간의 공로를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성탄이 위로의 메시지이며, 성도들에게는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질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여전히 높아지려 하고, 더 많이 소유하려 하며, 남보다 앞서려 하지 않는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인생관의 불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참된 성탄의 기쁨은 선물의 크기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약속에 있다. 성탄을 맞는다는 것은 단지 예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길을 따르겠다고 결단하는 일이다. 오직 사랑의 논리로 살아가겠다는 고백의 실현이다.
성탄절 아침,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예수께서 오늘 이 땅에 오신다면, 과연 어디에 머무르실까?” 그 질문 앞에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마구간 하나라도 내어드릴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성탄의 현장이 될 것이다. 성탄은 그저 지나가는 절기가 아니라, 오늘을 바꾸는 빛과 소망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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