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관점에서의 올바른 기독교 영성(115)
<한국 교회사에서 오순절 영성 운동과 기복신앙의 시시비비>
이정희 목사
진해영광교회 원로
부산 백석신학대학교 겸임교수
1. 들어가는 말
지난 호에서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의 직접적인 배경은 1903년 영국 웨일즈 대부흥 운동과 1906년 미국 LA의 아주사 거리의 부흥 운동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1906년 9월에 미국의 ‘존스톤’ 목사가 내한하여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대부흥 운동을 소개하며 설명하였고, 이어서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성령님의 영적 사역이 길선주 목사를 중심으로 강하게 나타났음을 기술하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 김익두, 이기풍, 이성봉 목사 등의 강력한 은사가 나타나는 집회와 많은 부흥의 역사가 있었지만, 이들도 말년에는 이러한 사역을 멈추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비슷한 은사 집회를 행하는 이단들의 출몰로 인하여 신비주의 및 기복신앙으로 오해를 받으며 매도되는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당시 영적 현상의 긍정과 부정적인 영향을 배경으로 본 호에서는 당시의 잘못된 이단의 출현과 여의도 순복음 중앙교회(조용기 목사)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기존교회 속에서의 성령님의 강한 역사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 당시와 현재의 잘못된 영성과 이단들의 출현
본 기고의 100회 이전의 내용에서 한국교회 이단의 역사에 대해서 오랫동안 논한 적이 있었다. 이를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론에서 기술한 대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과 그 이후에 일어난 성령님의 강한 역사는 한국교회의 여러 면의 부흥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 반대의 현상도 일어났으니 바로 영적 혼란을 주는 신비주의와 이단들의 출몰이었다. 예를 들면 1930년대의 이용도 목사의 신비주의와 6.25 이후의 박태선의 전도관, 1960년대의 용문산 기도원의 나운몽, 동방교의 노광공, 아직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문선명의 통일교, 김기동의 귀신론 등은 한국교회와 사회의 큰 문제가 되었다. 또한 그 뒤를 이어 1992년의 다미선교회 등의 수많은 이단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또 생겨나고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 등이 교계와 사회에 큰 문제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3. 기존 교회에서 다시 일어난 성령님의 영성과 그 영향
앞서 서론에서 기술한 대로 대부흥 운동의 주역이었던 길선주, 김익두, 이성봉 목사 등의 성령 사역이 여러 가지 상황으로 다소 약화되었다. 하지만 다시 강력한 성령님의 은사사역이 기존 교회 속에서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경우는 하나님의 성회 교단의 조용기 목사를 중심한 여의도 순복음 중앙교회였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논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성회와 순복음 중앙교회 시작의 계기: 앞서 기술한 바 있지만, 한국에서 하나님의 성회 교단의 출발은 1906년 미국의 아주사 부흥의 역사를 경험한 ‘럼시’라는 여선교사가 1931년 한국에 와서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강조하였고, 최초의 하나님의 성회 교회를 세웠다. 그 이후 1953년에 아주사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체스넷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하나님의 성회 총회와 신학교를 세웠다. 이 신학교에 조용기 목사와 장모인 최자실 목사가 입학했다. 조 목사는 22살에 교회를 개척했으며 요한 3서 2절을 기초한 오중복음 삼중축복을 강조했다. 이러한 복과 은사적 영성은 1960년 70년대의 어려웠던 시절에 이를 기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지금의 세계 제일의 규모인 여의도 순복음 중앙교회가 되었다.
2) 순복음 중앙교회의 명(明)과 암(暗): 앞의 내용처럼 이 교회는 외적으로 놀라운 부흥의 역
사를 이루어갔으며 부흥을 열망하는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오중복음 삼중축복을 앞세운 조용기 목사의 신학과 목회는 계속 한국 교계에 많은 시
시비비를 일으켰다. 특히 필자가 속한 예장통합 교단에서는 1983년 68회 총회시에 조용기 목
사를 사이비로 규정했고, 1994년에 이를 해지했다. 1980년대에 신학대학원을 다녔던 필자의
당시 수업 시간은 이러한 논란이 토론의 제목이기도 했다. 또한 목사고시 논술고사의 제목이
이를 비판하는 ‘올바른 성령론’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하기
로 하겠다.
4. 결론 및 제언
한때 교계에서 “꿩 잡는게 매다”란 비아냥거리는 유행어가 있었다. 이 말은 바로 필자가 신학교를 다닐 때와 첫 목회 할 때의 80~90년대의 말이다. 이유는 당시의 조용기 목사를 향하여 “신학적인 문제가 있어도 교회만 부흥되더라”는 자조적인 평가의 말이었다. 그만큼 당시로는 성령님의 은사적 영성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기복신앙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지나친 면이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견제는 균형을 이루었고, 현재로는 큰 문제 없이 서로 연합하고 협력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이루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이러한 세계와 한국교회의 오순절 운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논하면서 올바른 영성과 잘못된 기복신앙을 계속 기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