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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① 맹의순과 이규호 연재 7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4:09 수정 2026.01.15 14:09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① 맹의순과 이규호 연재 7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목사 인물열전; ① 맹의순과 이규호 연재 7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교회)
문학박사, 전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현 재단법인 창원YMCA 법인이사장

3. 십자가의 길, 맹의순
1) 포로수용소(Prisoner of War Camp) 선교
‘십자가의 길, 맹의순’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포로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쟁포로가 된 사람 중에는 군인이 아니라도 위험지역에 머물러 있거나 수상한 행동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포로가 될 수 있었다. 총 한번 잡지 않았어도 ‘붙잡히면’ 포로가 된 것이다. 그런 포로를 수용한 곳을 가리켜 포로수용소(Prisoner of War Camp)라 불렀다. 이런 포로수용소는 미8군에 의해 1950년 8월12일 부산 동래거제리에 철조망을 친 수용소가 세워지는데, 이를 부산포로수용소라 부른다. 이는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기 전까지 남한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했던 대표적인 수용소였다.
포로들은 수용소 안에서 종교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수용소 당국도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였다. 당시 포로들은 자신의 종교와 신념에 따라 기독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 등의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 가운데 포로수용소 당국은 기독교에 대해선 우호적이었다. 이 기간 동안 부산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외국선교사는 힐(Harry J. Hill), 캠벨(A. Campbell), 보켈(Harola Voelkel), 텔미지(John E. Talmage), 우드베리(Earle J. Woodberry), 커밍(Brece A. Cumming), 디캠프(E. Otto Decamp) 등이 있었다. 이들 외에도 다수 우리나라 사역자들도 포로선교활동을 감당하였다. 이때 맹의순도 자신이 ‘전쟁포로’로 수감된 몸이었지만 거제리 포로수용소에서 광야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며 온몸을 던져 포로선교활동을 하다 순직하였다.
십자가의 길이란 자신의 입신양명을 다 포기하고 미지의 땅인 한국에 들어와 자신과 가족의 삶을 희생하면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서양선교사들, 이들이 십자가의 길을 이 땅에서 먼저 걸은 분들이다.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걸으셨고, 그분이 따라오라고 가르치신 길이기도 하다. 맹의순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 길을 따르다 26년8개월 만에 꽃다운 인생을 마감한 분이다. 그가 걸은 부산 거제리포로수용소에서 목회자로서의 사역과 삶, 그리고 그의 순직과정을 묵상해본다. 맹의순의 광야교회에서의 목회자로서의 사역과 삶은 김시규가 쓴 그의 학위논문에서 맹의순이 쓴 1952년 1월1일부터 3월26일까지 일기를 중심으로 맹의순이 걸은 십자가의 길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에 김시규의 논문과 남대문교회가 엮어 2017년 편찬한 『십자가의 길』에 나타난 맹의순의 일기를 중심으로 부산 거제리포로수용소에서 맹의순의 목회사역과 삶을 살펴본다.
2) 맹의순의 목회사역
맹의순이 부산 거제리포로수용소에서 포로로 수감된 기간은 1950년 9월16일부터 1953년 8월11일까지 약 23개월간이다. 그는 1926년 1월1일생으로 1953년 8월11일 순직했으므로 26년8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이 땅의 삶을 마감하였다. 맹의순은 그가 포로로 수감된 것에 대해 억울함과 좌절감에 사로잡힐 법도 한데 오히려 그는 이 기회를 말씀증거의 기회로 삼았다. 수용소 당국은 포로들에게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지원했으므로, 맹의순은 그가 포로로 수감된 지 2-3개월 정도 지난 시쯤인 1950년 12월 ‘광야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그와 함께 피란길에 나섰던 남대문교회 중등부제자 한용택, 포로수용소에서 다시 만난 남대문교회 중등부제자 이희원, 전도사로 이원식을 선택해 이들과 합심하여 광야(포로수용소)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맡겨주신 귀한 백성(포로)들을 위해 광야교회를 세워 목양사역을 감당하였다.
광야교회 목회자로 맹의순이 감당한 사역은 예배 및 설교, 성경공부, 심방과 전도 등이었다. 먼저 맹의순의 광야교회에서의 예배와 설교부터 살펴본다. 광야교회는 매일 새벽기도회,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예배가 있었으며, 주일에는 낮예배와 저녁예배가 있었다. 이때 맹의순은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였다.
함께 포로생활을 하다 석방되어 현재 브라질 상파울루 동양선교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그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낸 문명철의 『슬픔도 고통도 짜우짜우』란 책에는 맹의순의 설교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그는 유능한 설교가로 문장력과 표현력이 뛰어났다. 때론 잔잔한 호수같이 호소하는가 하면 밀려오는 거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듯 몰아치기도 하였다. ...가슴으로 전하는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그의 설교 시간이면 많은 포로가 자리다툼을 할 정도였다.”
맹의순이 강단에서 뜨겁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설교준비에서 비롯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 종이를 쉽게 구할 수 없었던 맹의순은 따로 설교문을 작성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본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내용을 기억해 설교했으니 얼마나 생명력이 넘쳤겠는가. 그의 일기에 설교준비를 위해 여러 번 날 밤을 세우기도 했으며, 설교할 시간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까지 씨름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맹의순은 문명철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면서 ‘설교자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많은 기도로 준비해야 하지만, 설교자가 설교한 내용대로 삶을 살아갈 때 그 설교가 끝난 것이다’ 라는 맹의순의 말을 전하고 있다. “1952년 6월25일, 그는 아끼던 책 한 권을 나에게 주었다. 류형기 목사 편저로 되어 있는 성경주석이었다. 설교자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기도로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 참다운 설교를 할 수 있고 설교가 끝난다고 했네. 이 책은 내가 특별히 아끼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문형에게 주는 것이니 많은 도움 되길 바라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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