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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금빛등대 - 끝이 아닌 은혜의 시간, 한 장 남은 달력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4:10 수정 2026.01.15 14:10

끝이 아닌 은혜의 시간, 한 장 남은 달력
이윤민 목사
금빛교회

얇아진 시간의 두께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다. 벽에 걸린 달력이 휑하다. 연초에 두툼했던 그 존재감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달랑 한 장만이 외롭게 매달려 있다. 우리는 늘 시간을 무한한 자원처럼 여기며 살아가지만, 12월의 달력은 우리에게 "너의 시간은 유한하다."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아주 냉정하게 웅변한다.
탁상 위에 걸린 한 장의 달력이 새삼스레 보인다. 사람들은 남은 시간의 양을 보고 아쉽다고 말하지만, 사실 달력이 얇아졌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많은 날들을 견디고 쌓아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달력의 빈자리는 허무가 아니라 발자국이다. 우리는 그 위에 울고 웃고 넘어지고 일어나며 한 해의 길을 걸어왔다.
12월의 달력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햇살조차 낮게 비스듬히 들어오고 바람도 찬데, 사람들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조금 더 따뜻해진다. 아마도 한 번쯤은 “수고했다, 그래도 잘 버텼다.”라고 자신에게 말해보고 싶은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페이지 앞에 선 우리에게 조용한 소망 하나가 고개를 든다. “내년에는… 그래, 좀 더 잘해보고 싶다.”
달력 마지막 장은 기억을 꺼내는 달이다. 사람들은 한 해 동안의 실패를 되새기고, 잘한 일을 돌아보고, 놓친 인연을 떠올린다. 지나온 시간의 파편들은 때로는 마음을 찌르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의 조각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비록 부족했지만, 그래도 어떤 날은 최선을 다했고, 어떤 날은 사랑하려 애쓰며 위대한 하루를 건너왔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시간을 헤아리는 일은 단순히 얼마 남았는지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날들 속에서 내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이루었으며, 무엇을 놓쳤는지 깨닫는 과정이다. 우리가 그 시간을 기억할 때 비로소 지혜는 조용히 우리 마음에 스며든다.
달력이 한 장 남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지막 장은 끝이 아니라 ‘추가 기회’의 시간이다. 12월은 하나님이 주신 보너스와 같다. 되짚어 보고, 정리하고, 관계를 바로잡고,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달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이 한 장이 앞서 지나온 열한 장보다 더 귀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제 늦었지 않나?”.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이렇게 답한다.“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요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시는 시각엔 ‘늦음’이 없다. 한 장 남았다는 것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외롭게 남은 달력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너는 이 마지막 장에서 무엇을 채우고 싶은가?”. 기록은 우리의 것이다. 하루하루가 또박또박 새겨지듯, 우리의 선택과 말과 마음이 마지막 페이지를 채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사랑할 수 있고, 아직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고, 아직 감사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 돌아갈 마지막 소망의 시간이 남아 있다.
다가오는 새해가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걸어가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사 43:19).
우리는 지나온 일을 통해 배우지만, 하나님은 다가올 일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신다. 기억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만, 소망은 미래를 향해 열린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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