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문명사회를 떠받치는 마지막 기둥이다. 정치가 흔들려도, 언론이 편향되어도,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오직 법정이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재판관을 향해 가장 강한 어조로 “바르게 판단하라”, “공의를 굽게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재판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1장은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무게 있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여기에는 재판관의 권력이 하나님에게서 위임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어느 권력도, 어느 집단도 재판의 공정성을 마음대로 주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재판관이 한쪽 편으로 기운다면 하나님의 권한을 도둑질한 범죄자가 된다.
레위기 19장은 빈부나 지위에 흔들리는 재판을 엄격히 금지한다. “가난한 자라고 해서 두둔하지 말고, 세력 있는 자라고 해서 편들지 말며, 오직 공의로 재판하라.” 성경은 약자를 보호하지만, 그 약자라는 이유로 불의한 결과를 만들어도 된다고 한 적은 없다. 재판은 동정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며, 감정이 아니라 진실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잠언 17장은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것”을 하나님이 미워하신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오늘의 법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가 공공연한 현실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사회의 심장은 이미 병들어 있다는 징표다. 재판은 한 사람의 인생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전체의 도덕적 좌표를 결정한다.
중앙지검장에 ‘항소 포기’에 관여한 박철우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이 임명됐다는 소식이다. 문재인 정부 때 요직을 거치는 등 친여성향으로 알려진 박 지검장은 중앙지검 대장동 수사·공판팀에 “항소를 재검토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오히려 검찰을 장악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람은 자고로 경찰서와 병원을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옛날 시골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경찰서는 바른 삶, 병원은 건강한 몸을 의미하는 말이다. 아울러 경찰관은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하고 의사는 바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의 됨됨이를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 법이다.
오늘 우리는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더 민감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의 판결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법원의 판단 하나가 정치적 파장을 만들어 내는 현실 속에서‘바른 재판’은 법조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존 문제다. 재판이 흔들리면 정의가 흔들리고, 정의가 흔들리면 공동체는 불신으로 무너진다.
지금 한국 사회가 필요한 것은 거창한 개혁 논쟁이 아니다. 성경적 정의에 근거한 단 하나의 원칙이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 사실을 다시 기억하는 순간, 재판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정의의 통로가 되고, 법정은 싸움터가 아니라 진리의 무대가 된다.
지금도 공의를 굽지 않고 판결문을 쓰는 누군가의 손끝을 통해, 하나님은 이 땅에 정의를 흘려보내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재림심판 때에 행위록에 기록된 그대로 모두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당신들은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 정말 맡은 자로서의 사명감에 충실했다고 분명하고 떳떳하게 말할 자신이 있는가?” 권리와 의무는 동시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