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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금빛등대 - 시위와 권력의 거울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4:20 수정 2026.01.15 14:20

시위와 권력의 거울
이윤민 목사
금빛교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옹기가마에 넣어 불을 지폈다. 이제는 잘 구워졌겠지 하고 끄집어 내어보니 좀 덜 구워져 하얀 모습이었다. 오늘의 백인이다. 이번에는 좀 더 구웠더니 너무 타버려서 새까만 흑인이 나왔다. 세 번째는 적당히 구워내니 노랑 노랑 하게 잘 구워진 황색인이었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황색인의 대표적 나라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인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아니더라도 가장 잘 지내야 할 세 나라는 역사적으로 얽히고설킨 그런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은 5천 년 역사를 통해 우리를 괴롭힌 대표적 나라다. 일본도 36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나라를 점령하기도 했다.
민주당 양부남 의원은 지난 4일 특정 집단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이 인정되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정 국가‧국민·인종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공연히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특정 국가는 중국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국민의 힘은 이에 대해 “반미·반일 시위에는 침묵하면서 반중시위만 문제 삼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 온 민주당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는 지적이 쏟아지는 판이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자 ’그때그때 달라요‘의 코미디 같은 형국이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가까운 사람끼리의 싸움이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의 열납 여부로 생긴 질투심이 살인 원인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가까운 이웃 간의 시기 질투심이 서로 다투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내용이다.
권력자는 언제나 권력이라는 양날의 칼을 휘둘러 보려는 미혹을 뿌리쳐야 한다. 권력은 항상 ’정의‘라는 단어를 전제한다. 진정한 정의는 외부의 적을 향한 분노가 아니다. 우리의 내부를 향한 불의에 대한 저항이다.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 7)“고 말씀 하신다. 정의의 기준은 상대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양심이다.
오늘 우리의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심을 경청하기보다 여론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형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권력은 국민 위의 존재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위탁받은 자의 책임이다. 시위는 언제나 이 나라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 되어야 한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롬 13 ; 1)“ 즉 권력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신탁‘이다. 그러나 위임받은 자가 사익을 위해 권세를 휘두를 때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신다. 권력은 언제나 불편한 진실을 두려워 하지만 역사는 늘 진실의 편에 서 있었다.
진리의 편에 선 권력만이 살아남는다. 거리의 함성은 단지 혐오의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와 정의를 갈망하는 민심의 외침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만한 권력을 낮추시고 정의를 구하는 백성을 일으키신다. 민심은 항상 하나님의 심판도구가 되어왔다. 그게 역사다. 지금 사회가 직면한 시위의 불길은 중국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무서운 채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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