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全體主義, totalitarianism)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말하면, 개인은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극단적으로 국가나 정부와 같은 집단의 이익만을 강조하며, 지도자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정치사상 혹은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이런 전체주의를 통치 원리로 삼은 국가를 전체주의 국가라고 말한다. 우리가 전체주의라고 말할 때, 2차 대전 당시의 파시즘체제의 이탈리아 등 일당 정부를 지칭했으나, 광의로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개인의 생활 모든 측면을 통제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지칭한다.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제1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새로운 파시즘(fascism)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토탈리타리오(totalitario)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모든 것은 국가에 있으며, 국가 외에는 어떤 것도 없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Tutto nello Stato, niente al di fuori dello Stato, nulla contro lo Stato.”라고 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에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일당 정부와 동의어가 된 것이다.
널리 알려진 바처럼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는 제1차 대전 이후 파시즘을 창설하고 최초의 파시스트당을 조직했다. 1921년 11월에는 파시스트당의 당수가 되었다. 1922년 10월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강력한 독재정권을 실시했다. 1933년에는 독일과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독일 일본과 함께 국제 파시즘 진영을 구성했다. 1940년에는 전체주의 국가를 지향했던 독일 일본과 3국 동맹을 결성하고 제2차 대전에 참전했으나 패전했다.
전체주의는 인류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 정도가 아니라 수많은 국민의 자유와 인간을 말살하고,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고,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전쟁과 학살을 일삼았던 악한 정치 체제였다. 이런 중앙집권적 전체주의가 20세기 이전에도 있었지만, 20세기의 아돌프 히틀러 통치하의 나치 독일(1933-1945), 요시프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1924-1953), 15년 전쟁기의 일본(1931-1945)이 대표적인 전체주의 국가였다. 오늘의 북한(1945-현재) 또한 전체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주의는 기존의 모든 정치체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국가권력 기구를 강화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서 독재정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인간의 신념과 행동은 일방적으로 제한되어 집단적 순응만이 허용되어 사회가 급속도로 획일화된다. 반대의견은 반국가행위로 낙인찍어 죄악시하고 견해를 달리하는 정당이나 조직은 탄압하고, 해산하거나 궤멸시킨다. 그래서 다양성과 창의성은 훼손된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국가 목표 실현이 최우선시되어 언론 기관을 장악하고 여론을 왜곡하거나 조작한다.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하거나 통제하여 악법을 제정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반대세력을 약화시키거나 궤멸시키고, 경찰권을 강화하여 통치자의 의도대로 권력을 행사한다. 또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 허용되고 정당화 된다. 전체주의 확립을 위해, 그리고 그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선거 부정을 획책하거나 선거 결과를 조작한다. 그래서 전체주의의 특징을 정리하면, 첫째, 개인보다 국가나 집단을 우선시한다. 둘째, 권력이 집중화되고, 극단화된다. 셋째, 국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체계화되고 일상화된다. 넷째 선전과 선동, 여론조작이 강화된다. 결국 개인의 자유와 인권 복지는 크게 제한되고, 연애와 결혼, 자녀 출산과 교육 등 소소한 가정사까지도 통제되고 종교의 자유마저도 허용되지 않게 된다. 무솔리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가를 떠나서는 인간과 영혼의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단체도 국가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민이 국가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창조한다.” 1922년 이후(1922-1943) 이탈리아 총리로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1936년 이후 “정부 수반이자 파시즘의 두체(‘최고 통치자’라는 뜻)이며 제국의 설립자이신 불세출의 베니토 무솔리니”라고 자칭했던 그는 1943년 연합국에 패배한 후 도주하는 신세가 되었고, 망명정부를 세우기도 했으나 1945년 4월 27일 체포되었고, 28일 무솔리니는 애인 페타치와 함께 처형되었다. 절대권력자의 최후는 비참했다. 시체는 트럭에 실려 밀라노로 보내졌다. 수많은 군중에 의해 차이고 짓밟혔고, 시체는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과도한 권력행사로 민중의 불신을 샀던 그는 61세의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가 저질은 전쟁과 살인, 폭력 등 악행을 기억하고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