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군국주의(軍國主義, Militarism)라고 말할 때 이 말은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국가의 중요한 목적으로 생각하여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사회구조나 국민의 생활 양식을 군사력 강화에 종속시키는 국가체제를 의미한다. 이를 군사주의(軍事主義)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영어의 Militarism을 직역하면 ‘군사주의’로 번역될 수 있다. 이 군사주의는 군사력을 국가의 최우선 순위에 둔다. 그래서 군국주의는 침략, 약탈, 정복, 무기생산 등 일련의 전쟁행위를 국가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군사력 확보를 국가의 근본으로 삼는다. 이렇게 볼 때 군국주의는 항상 침략전쟁을 정당화한다. 이를 위해 국민을 군인으로 만들고, 국가를 거대한 ‘전쟁 기계 Kriegsmachine’가 되게 한다.
지난 세기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프로이센 왕국과 일본이었고, 그리고 지금의 북한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센(Preussen, Prussia)은 독일 북부지역에 위치한 왕국이었고 1947년까지는 독일북부의 주(州)로 존속했다. 프로이센은 모든 사회체제를 군사화하려고 했고, 군대뿐만이 아니라 황제 이하 전 내각의 장관들과 공무원들의 제복이 군복이었다. 사회를 주도하고 지배하는 계급도 군 장교, 혹은 장군을 독점하는 군사귀족이자 토지귀족인 ‘융커 Junker’들이었다. 이런 문화는 프로이센이 통일을 주도하여 나타난 독일 제국이 계승했다. 물론 과거의 프로이센이 군국주의를 지향했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다.
과거 일본은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였다. 이들은 군사력이 곧 국력이며, 군대가 나라의 정치·사회 등 모든 부문을 통솔하여야 한다고 여겼다. 일본의 내각관방장관이었던 오무라 조지는 1973년, 군국주의 사상은 “한 나라의 정치, 경제, 법률, 교육 등의 조직을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으로 국가 위력을 발현하며, 따라서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의 측면을 군사에 종속시키는 사상을 말한다.”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이것은 일본이 지향해 온 군국주의 실상에 대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에서 군국주의는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1868) 이후 시작되었다. 프로이센의 군사고문으로부터 근대 군사 이론과 황제에 대한 복종이라는 이상이 소개되었고, 1873년에는 육군 원수이자 내각총리대신을 두 번 역임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1838-1922년)가 도입한 징병제를 통해 사회적 기반을 다지게 된다. 그는서구식 군대를 연구하기 위해 유럽을 순방한 바 있고, 프로이센의 군국주의, 팽창주의, 공업 발전에 감명을 받고 농업국이었던 일본을 프로이센과 같은 공업 군사 국가로 탈바꿈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프로이센을 모방한 군 근대화를 추진하였는데, 그 첫 조치가 1873년에 도입한 징병제였다. 이 징병제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애국주의적 가치를 교육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생겨난 부국강병(富国強兵)이라는 표어는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적 국력 확장 정신을 보여준다. 군사력을 기반에 둔 확장주의적 외교 정책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두고 열강 세력에 합류하며 더욱 힘을 얻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일본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대공황의 여파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서 농민들의 피해가 극심하였고, 공업 분야도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군부 세력은 사회 불안과 경제 불황을 벗어나고자 침략주의 정책을 지향하고, 군부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당시 지주와 자본가들은 농민 운동, 혹은 노동 운동으로 사회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군부 세력에 지지를 보냈다. 그 결과 1930년대에 일본에서 군부 세력은 국가 정책 결정의 중심에 있었고, 이들은 군비를 확장하면서 침략 정책을 강화하게 된다. 그래서 1930년대 군국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1931년에는 만주침략을 강행하였고, 1932년 5월 15일에는 이른바 5.15 사건이 일어난다. 일본 제국 해군의 청년 장교들이 총리대신이었던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를 암살하고 관저에 폭탄 테러를 가한 반란 쿠데타였다. 이를 통해 군국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후 급속하게 전시체제로 돌입하였다. 그래서 1931년 9월 만주사변(1931. 9. 18-1932. 2. 18)을 시작으로 중일전쟁(1937. 7. 7-1945. 9. 2), 태평양전쟁(1941. 12. 7-1945. 9. 2)으로 이어지는 ‘15년 전쟁’으로 불리는 침략전쟁이 계속된다. 이런 전쟁정책의 와중에서 ‘국민정신총동원’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신사참배가 강요되었고, 이를 거부한 약 2천 명이 투옥되고 50여 명이 옥중에서 순교하였고, 해방과 함께 마지막까지 옥중에 남아 있던 26명이 출옥하게 된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가져온 어두운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