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 계속 논한 대로 우리의 올바른 영성을 정립하고 잘못된 기복신앙의 탈피를 위해서는 이런 오염되고 혼합적 믿음의 근원인 무교를 모르면 안 된다. 하지만 무교는 우리나라나 특정 지역과 민족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어떤 종교보다 더 역사가 오래되었고, 지역의 특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세계에서 유사한 형태의 신앙이 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호에서는 세계 각 지역 무교의 형태적 현상과 신앙 체계를 논하고자 한다.
II. 세계 각 지역 무교 신앙의 공통점
무속 신앙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인류 최초의 종교 형태라고도 보는 오래된 신앙 체계이다. 또한 이는 지역과 문화권을 넘어 공통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으며,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과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영혼의 존재’'를 믿는 믿음은 거의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존재에는 영혼이 있으며, 육신의 사후에도 존재하며 인간 세상에 유무형으로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바로 이런 영혼들과 소통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전재가 무당이며, 이를 의존하는 행위가 세계 모든 무교의 공통적인 일이다. 특히 시베리아의 무당들이 자연의 영혼에 제사를 지내는 일과 아메리카의 무당들이 동물의 영혼을 불러들여 치유 의식을 행하는 일 등이 그러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III. 각 지역 무교의 다양한 형태
1. 시베리아의 무속 신앙 : 역사적으로 가장 체계적인 무속 신앙의 모델을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시베리아 지역을 말한다. 이곳은 혹독한 추위의 환경 속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정교한 샤머니즘 전통을 발전시킨 야쿠트족, 부리야트족, 투바족 등이 있다. 이들은 주로 동물의 영혼, 자연의 정령과 깊이 교감하면서 질병 치료와 사냥의 성공, 날씨 예측 등 실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무당의 역할에 의존한다. 특히, 샤먼의 의례에서 사용되는 북, 의상, 노래 등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투바족 샤먼의 의례에서는 ‘크흠’이라는 독특한 창법이 사용되는데, 이는 샤먼이 영적인 존재와 소통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2. 아프리카의 무속 신앙 : 이곳의 무속 신앙은 조상 숭배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이들은 조상의 영혼은 후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믿는다. 그래서 질병이나 불행이 닥쳤을 때, 무당은 조상의 영혼을 달래고 문제 해결을 찾기 위한 의례를 집행한다. 또한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는 무당은 혈통적인 영적 능력이 있다고 믿으면서 세습무가 많으며, 무속 의례에서는 음악적 강렬한 리듬과 춤의 움직임을 통해 샤먼은 트랜스 상태에 빠져들고, 영적인 세계와 소통하는 경지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3. 아메리카 원주민의 무속 신앙: 이 지역의 무속 신앙 역시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자연과 조화있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동물, 식물, 그리고 자연 현상에 영적인 의미를 둔다. 특히 북 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은 무당이 되기 위해서 며칠 동안 단식하며 자연 속에서 영적인 체험을 통해 자신의 수호령을 찾고,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지역에서는 ‘아야와스카’라는 환각성 식물을 이용하여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고, 질병 치료, 미래 예측 등의 능력을 얻으려 하는 위험한 행위를 하기도 한다.
4. 한국의 무속 신앙: 여기에 대해서는 앞의 기고에서 이미 기술한 바 있지만, 위의 1~3번까지 지역의 무속과 비교하기 위해서 다시 약술한다면, 한국의 무당은 신령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 개인의 점복과 질병 치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다양한 의례를 행한다. 특히, 굿을 통한 화려한 의상, 춤, 음악 등의 종합 예술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불교, 유교, 도교 등 다른 종교와 그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종교들과 함께 그 정체성이 변질되었다. 예를 들면, 칠성굿은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한 도교적 요소가 강하며, 죽은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굿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IV. 맺는말
이상으로 볼 때 무속 신앙은 어느 한 지역의 고유한 민속신앙이 아니다. 서론에서 기술한 대로 무속 신앙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지역과 문화권을 넘어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다. 물론 각 지역의 특성과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변형되기도 했지만, 그 뿌리는 거의 동일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을 우리 기독교는 어떻게 볼 것인가? 또한 올바른 영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며 연구 과제이다. 이에 대하여 앞으로도 더 깊은 통찰과 기고로 잘못된 무속적 기복신앙에서 우리의 올바른 영성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