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 세계적인 무교와 한국적 무교가 우리 한국의 문화적인 역사와 종교에, 또한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과 영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논하였다. 그동안 이에 대한 필자 나름의 연구와 기술하면서 느낀 것은 이는 너무 방대하며, 몇 차례의 기고로 끝낼 내용이 아니란 것을 실감하면서 다시 좀 더 전 세계적인 무교의 역사와 현재의 무교의 현실까지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무교의 역사는 인류 문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독특한 형태의 신앙 체계였고, 시대와 공간을 초월 하여 인간의 근원적인 영적 욕구를 갈망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왔기 때문에 올바른 영성을 위해서는 분명히 구분해야 할 일이다. 이에 앞으로 몇 차례로 나누어 무교의 역사적 재 조명과 각 지역의 무교적 특성을 논하면서 이를 어떻게 영적 분별해야 할지를 기술하고자 한다.
II. 무교 역사의 재조명
1. 용어적 의미로 본 무교의 역사적 명칭: 먼저 전 세계적인 통용어로는 그동안의 기고에서 기술한 대로 샤머니즘(shamanism)이며, 이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독립된 종교로 존중하려는 종교학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한국의 전통적 용어는 무속(巫俗), 무교(巫敎), 무(巫)라고 하는데 무속은 불교학자 이능화가 이를 전통적인 관습으로 이해하여 처음 사용한 말이며, 지금은 국문학자들과 민속학자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다. 무교는 개신교 신학자 유동식 교수가 처음 사용한 말로 우리 기독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무(巫)는 인류학자 조흥윤이 사용한 말이며, 한국의 샤머니즘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전통으로 존중한다는 뜻이 있다. 하지만, 무속인들은 자신들을 당골, 당골네, 당골 애미라고 부르기 좋아한다. 그 이유는 당골은 제정일치 사회였던 고조선 시대의 단군(檀君)과 고대 신라 왕의 명칭인 차차웅(次次雄)의 어원을 가진 역사적인 말로서, 무속인 스스로 자신들을 그 시대처럼 자신들이 귀한 존재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2. 구석기 시대의 무교: 역사적 뿌리로 볼 때의 무교는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에 그려진 주술적 이미지들을 통해 약 4만 년 이전까지로 볼 수 있다. Lascaux 와 Chauvet 의 동굴 벽화에 묘사된 동물 형상과 다양한 문양들은 당시 사람들이 영적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 사용했던 상징들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징들은 무당이 접신 상태에서 경험하는 환상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초기 인류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3. 신석기 시대의 무교: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신석기 시대의 여성 조각상, 즉 '비너스'상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무교의 의례 흔적이다. 이는 여성의 다산과 풍요를 추구하는 무교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농경 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미신이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예를 들면,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당시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거대한 T자형 기둥과 동물 조각들은 당시 사회에서 무당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유적들은 무속적 신앙이 단순한 개인적 신앙 체계를 넘어 사회적 결속과 질서 유지를 위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4. 석기 시대의 공통적인 숭배의 대상: 여기에 대해서는 앞서 104회 기고에서 기술한 바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약술하면, 첫째는 마나 숭배(mana)로서 ‘물체 내에 비인격적인 힘인 영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고 이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행위를 말한다. 둘째는 타부(taboo) 숭배로서 ‘금제(禁制)의 물건’이란 뜻으로 ‘거룩하고 신성한 것은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거나 가까이도 만져도 안된다’는 신앙이다. 셋째는 인신(人神) 숭배로서 조상 숭배나 사령(死靈) 즉, 죽은 사람이나 유명인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믿음이다. 넷째는 물신(物神) 숭배이다. 이는 남녀의 생식기를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작은 돌이나 나무 조각 같은 작은 물체에도 신이 거주한다고 믿는 서물(庶物) 숭배이다.
III. 맺는말
왜 이런 기고를 하는가? 기독교의 올바른 영성을 정립하고자 하는 차원의 글을 쓰면서 왜 무교에 대해서인가를 필자 스스로에게 때때로 던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서론에서 밝힌 대로 우리의 올바른 영성과 잘못된 기복신앙의 탈피를 위해서는 무교의 역사와 성격과 오늘의 현상을 알지 못하고는 제대로 올바른 영성을 조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음에는 각 지역의 무교의 역사와 현상을 조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