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현실에서 종교의 자유 혹은 신교(信敎)의 자유를 말하면 로마제국에서의 박해와 같은 정치적 탄압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헌법 제20조 1항이 종교의 자유를 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시대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종교의 자유가 훼손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20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종교의 자유’라고 말할 때 두 가지를 포함한다. 첫째는 종교선택의 자유, 곧 신앙의 자유를 말하고, 둘째는 자신이 선택한 종교의 종교행위의 자유를 의미한다. 종교행위의 자유는 종교적 행사의 자유, 종교적 집회와 예배, 결사의 자유, 종교교육의 자유, 전도 혹은 선교의 자유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종교적 행사의 자유란 그 믿는 바를 외부적으로 표현하는 각종 예배나 종교의식의 자유, 곧 거기에 참가하거나 참가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예배의 자유나 전도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에 속한 근원적이고도 기본적인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의 법학자 콘라드 헤세(Konrad Hesse, 1919-2005)는, 신앙의 자유, 예배의 자유, 종교적 결사의 자유를 종교의 자유의 본질적 요소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자유가 위협을 받아왔고 빈번하게 훼손되는 일을 경험했다. 최근의 일이 코로나 환경에서의 제한이었다. 방역이라는 이유로 집회를 제한하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했다. 성가대 연습을 하지 말라거나 식당을 운영하지 말라는 등 세세한 종교 행위의 자유마저도 제한하고자 했다. 방역이라는 이유로. 그런데 동성애나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이 제정되면 이런 자유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역사를 뒤돌아보면 신교의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역사는 신앙의 자유, 신교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기원 30년경 예루살렘에서 기독교회가 세워진 이후 첫 30년간은 유대교의 박해를 받았고, 64년 이후에는 로마제국의 정치적인 박해를 받았다. 250년 데키우스(Decius) 황제 이후에는 보다 조직적인 탄압을 받았기에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그 시대는 신교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기독교가 공인받고 국교가 된 이후에는 진정한 자유를 누렸는가? 그렇지 못했다. 기독교권의 로마교의 교권체제 하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 중세시대에도 파리의 존, 마르실리오, 윌리엄 옥캄, 위클리프나 얀 후스, 프라하의 제롬 같은 이들이 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지 않았던가. 16세기에는 종교개혁자들도 이교적 교권주의, 교황체제, 전제군주와 교황의 전권사상(Plenitudo Potestatis)에 대항하여 진정한 의미의 신교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그렇다면 17세기 이후는 진정한 자유를 누렸는가? 합리주의, 계몽주의, 이신론 혹은 그 이후의 서구사회에서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은 신앙은 끊임 없이 공격을 받았고 종교행위의 자유의 제한을 강요당해 왔다.
뒤돌아보면 기독교는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고, 그 결과로 오늘의 기독교 신앙을 계승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종교의 자유는 항상 제약을 받아왔다. 교회가 권력자의 요구에 묵종하고 순응했다면 오늘의 기독교회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종교행위의 자유일 뿐 아니라 신앙의 대상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교회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사명으로 일컬어져 왔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4가지 사명을 말하는데, 예배(라트레이아)를 비롯하여 증거(마르튀리아), 교육(파이데이아), 봉사(디아코니아)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사명은 교회의 본질과 관련되며,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집회와 예배를 소중하게 여겨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와 함께 집회의 자유는 한국에서도 거부되거나 침해를 받아왔고, 예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전제주의나 공산주의 혹은 독재정권 하에서만이 아니라 오늘 한국에서도 경험했다. 집회를 금지하거나 예배를 제한하고, 심지어는 교회를 폐쇄한 일도 발생했다. 뒤돌아보면 신교의 자유 혹은 종교의 자유, 그리고 종교행위의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우리 시대의 과제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사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