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흔히들 성령론과 은사 문제를 논할 때, 논쟁이 되기도 하고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은 ‘성령의 은사가 무속 신앙에서 비롯된 기복신앙과 무엇이 다른가?’란 질문과 비판이다. 필자의 경우는 50여 년의 목회 생활과 35년의 성서 신학원과 다수 신학교에서 비교종교학 강의를 하면서 이런 논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이에 대해서 40대까지는 은사에 있어서 상당한 비판자의 입장이었으나, 50대부터는 은사 문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나름대로 연구와 체험을 위해 많은 노력을 시도했다. 현재의 입장은 솔직히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으로서 양쪽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먼저 살펴볼 문제는 지금까지 몇 차례 논해온 무속 신앙에서 비롯된 기복신앙이다. 그 이유는 이를 제대로 모르면, 은사에 대한 수용이나 비판도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호에서는 한국형 무속 신앙이 우리의 신앙에 어떻게 미쳤는가를 논하고자 한다. 먼저 참고도서로는 이상운의 ‘성령의 은사와 교회 갱신’과 유동식의 ‘한국종교와 기독교’와 김태곤의 ‘한국의 무속’, 홍태한의 ‘우리 무당 굿의 세계’ 등을 참조하였음을 밝혀둔다.
II 한국 무교 신앙의 유형
한국 무속 신앙의 뿌리는 앞선 기고에서 기술한 대로 상고시대로부터 시베리아를 거쳐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북방으로부터 민간신앙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신라 제2대 남해왕 때로 본다. 그 이후 계속적인 확산과 더불어 독특한 한국적인 무교의 특징과 유형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논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형 무당의 외형적 직능적인 분류: 첫째, 굿형이다. 이는 굿만 할 수 있는 사제의 기능이다. 둘째, 점복(占卜)으로서 영력이 있는 무당이 점을 치는 행위를 말한다. 셋째, 굿과 점복형이다. 이는 굿과 점복의 두 가지 기능을 겸하는 경우이다. 넷째, 독경형(讀經型)으로서 무당과 비슷하지만, 독경만 하는 경우이다.
2. 무당의 성격적인 유형 1) 강신무(Charismatic shaman)의 종류: 첫째, 신내림을 받은 무당, 즉 강신체험(降神體驗)을 한 무당으로서 가무와 굿을 할 수 있고, 자신이 받은 영력으로 점을 치고 예언하는 무당으로, 남자는 ‘박수’, 여자는 ‘무당’이라 한다. 둘째, 명두형(明斗形) 무당으로 뜻은 ‘마마를 앓다가 죽은 어린아이 귀신’을 의미한다. 즉, 죽은 아이들(주로 7세 미만)과 혈연관계에 있는 자들이 신내림을 받는 경우로, 여아령(女兒靈)을 받은 경우를 명두, 남아령(男兒靈)의 경우는 동자, 태주 라고 한다. 셋째, 신내림을 받았으나 아직 서투르고 미숙한 무당을 ‘선무당’이라 한다. 이들은 주로 전통 굿을 주관하지는 못하고 두 손을 비비면서 치성하는 ‘비손’ 위주로 점을 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이상의 강신무는 시베리아와 동북아시아의 북방계 샤머니즘의 영향 때문인지 주로 한강 이북에서 성행했다. 가무의 형태도 강신 효과의 극대화(ecstasy)를 위해 장구, 징, 꽹가리, 제금 등의 음의 속도가 빠른 타악기 종류를 사용하고 있다.
2) 세습무(Priestly shaman)의 종류: 첫째, ‘단골’이라고도 하는데 무당을 하는 집안에서 강신 경험 없이 인위적으로 무당이 된 세습한 무당이다. 이들은 영력이 없고, 신권이 없기 때문에 신단(神壇)도 없고, 일방적인 가무로 굿을 하는 무당이다. 둘째, ‘심방형’으로서 단골형과는 달리 강신무처럼 영력을 중요시하며, 구체적인 신관이 확립되어 있다. 점을 치는 천문, 상잔, 명두 같은 무점구(巫占具) 등을 통해 신의 뜻을 묻고 전하면서 가무를 하며 굿을 하는데, 제주도에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심방형이나 단골형 등의 무당들은 주로 강신 없이 배워서 하기 때문에 학습무(學習巫), 습득무(習得巫)와 같다고도 한다.
또 한 가지는, 강신무가 북방계의 영향이라면, 세습무는 남방계 주술사(呪術師)의 영향으로 한강 이남 지역에서 많이 행해졌다. 가무의 형태도 세습무는 강신 효과의 필요성이 없으므로 강신무처럼 음이 빠른 타악기보다는 주로 완만한 속도를 내는 피리, 젓대, 호적, 등의 취주악기와 해금, 가야금, 아쟁 등의 현악기를 주로 사용하여 민속 문화재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III. 맺는말
지금까지의 무교를 논하면서 필자의 솔직한 마음은 목사가 기독교계 신문에 이런 내용을
기고할 필요가 있는가? 란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란
말처럼, 우리의 신앙에도 불교와 유교 등의 타 종교처럼 무속적 기복신앙이 많이 포함되어 있
다고 볼 때, 무속 신앙의 기본과 올바른 은사적 성령론의 정립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기면서 앞으로도 이에 대한 기고를 계속 시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