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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교회에서 출석1천명 교인이 되기까지 - 박석환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5:06 수정 2026.01.15 15:06

교회개척에서 출석1천명 중형교회
부흥 위해 기도의 양(量)을 채워라
박석환 목사
장유 소금과빛교회

2000년도에 교회를 개척하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교회가 빨리 부흥하지 않는 것이다. 개척교회 1년이 지나 장년 40명이 출석했다. 이때 어린이는 70명이 등록했다. 2년이 지나 장년 80명이 출석했고, 3년이 지나 장년 135명이 출석했다. 참고로 2000년 김해시 장유면은 도시가 아니다. 김해에서도 변두리 동네에 농사짓는 시골이었다. 그 당시 김해시 장유면은 16개 00리(里)가 있었고, 인구는 총16,000명이었다. 그중 면사무소(面事務所) 중심지에 인구 5,000명 정도가 밀집해 있었다. 주변에 작은 공장들이 많이 있었고 대부분이 논, 밭농사, 과수원 농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필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골 장유면에서 3년 만에 장년 135명이 출석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가족 중심으로 시작하여 1년에 재정 자립하고, 매년 100%씩 성장한 것은 사람의 실력이 아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 특별한 은혜이다. 그런데도 교회 부흥에 만족함이 없는 것은 초대 사도행전 교회는 지금 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날마다 더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마가 다락방에 120명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았다(행1장). 이날에 신도의 수가 3000이나 더하더라(행2;41). 남자의 수가 5000이나 되더라(행4;4). 남녀의 큰 무리더라(행5;14). 왜 나에게는 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느냐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하여 여러 세미나를 찾아다녔다. 한번은 서울 양수리 수양관에서 故 김충기 목사의 목회 특강을 들었다.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에 새벽기도가 너무 힘들어 새벽에 자주 늦잠을 잤다는 것이다. 1970년대는 새벽종을 쳤는데, 새벽 타종을 치고 다시 사택으로 돌아와 늦잠을 잤다고 한다. 이런 날이 계속되니 100명 출석하던 교인이 1년에 다 빠져나가고 20명만 남았다는 것이다. 새벽기도만 없으면 목회를 해보겠는데, 새벽기도 부담 때문에 목회를 포기해야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목회를 포기할 맘을 먹고 고민하는데 친구 전도사들이 산기도 가자고 해서 따라갔었다. 1주일 금식기도를 시작했는데 마지막 날 성령의 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토록 힘들던 새벽기도가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기도가 능력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하여 교회에서 40일 철야 작정기도를 시작했는데, 놀라운 일은 나갔던 교인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분이 섬기던 교회가 유명한 서울 강남 중앙침례교회이다.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결단했다. 나는 김충기 목사만큼 유명하지 않으니 50일 철야기도를 시작하자. 뜻을 같이하는 교인들에게 같이 동참할 것과 담임목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매일 저녁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긴 장의자(長椅子)에 잠을 자고, 일어나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기도해도 초대교회 같은 3000명, 5000명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고,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잠자며 기도운동을 계속해 나갔다.
교회에서 기도운동이 일어나니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숫자가 많아졌다. 장년 교인 40명 출석할 때 새벽기도는 20명이 참석했다. 그때는 새벽기도 참석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심지어 가족들 이름을 부르며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비록 작은 개척교회였지만 온 교인들이 기도하는 기도 공동체 교회였다. 새벽기도를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저녁 기도회를 만들어 매일 저녁 8시-9시에 기도하게 했다. 이때는 교회와 전도 대상자(태신자)를 위해 기도하였는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기도 욕심이 생기면서 교회 강대상에서 1인용 텐트를 치고 기도를 계속했다. 겨울에는 텐트 안 침낭에 들어가 잠을 잤다. 별로 춥지 않고 견딜만 하다. 문제는 여름철 더위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교회 출입문 옆에서 잠을 청하지만 추위보다 더위를 견디기는 정말 힘들었다. 이런 기도 생활을 10년 이상 계속했다. 지금은 목양실 쪽방에서 기도하며 잠자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교회가 평안하게 꾸준히 성장했다. 교회개척 8년 만에 자연녹지 2500평의 성전 부지를 마련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성전건축을 시작했는데 1100평의 건평과 1200석의 예배당을 완공했다. 개척 10년에 장년 출석 300명, 교회학교 학생들, 중고등부 학생들을 합하면 약 500명이 출석했다. 기도의 재미를 본 후에 기도 노하우(Know-how)를 개발했다. 토요일 저녁에는 주일날 설교를 위해 강대상을 잡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위해 기도했다. 또 성도들이 앉는 장의자(長椅子)에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의자에 안수기도를 했다. 이 자리에 앉는 000성도, 000집사 은혜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안수(按手)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지만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빈자리를 붙잡고 기도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평안히 성장하고 부흥했다. 기도를 열심히 해도 당장 원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도는 쌓이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대의 댐이 소양감 댐이다. 소양강 댐은 7년동안 공사하여 7년동안 물을 저장하였다고 한다. 총 저수용량이 29억톤이라고 한다. 물의 저장이 많은 만큼 홍수조절, 공업용수, 농업용수, 식수, 수력발전용의 다목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성도의 기도는 쌓여서 금향로에 담겨져 하나님 보좌에 올려진다.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시록8:3,4). 기도는 하다가 안 해도 한 것만큼 유익하다. 늦다고 생각되는 지금이야말로 기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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