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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교회에서 출석1천명 교인이 되기까지 - 박석환 목사

크리스천경남 기자 입력 2026.01.15 15:10 수정 2026.01.15 15:10

교회개척에서 출석1000명(중형교회)
교회개척을 시작하다
박석환 목사
장유 소금과빛교회

부산 강서의 D교회에서 부교역자로 6년간 사역하였다. 6년 동안 한 교회에서 사역하다 보니 부교역자 생활이 너무 편하고 쉬웠다. 그때 소원은 평생 부교역자로 사역하다가 부교역자로 은퇴하고 싶었다. 사실은 나름대로 맡은 부서를 부흥시켰고, 교인들로부터 인정도 받았기 때문에 계속 사역하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사임해야만 하는 사건이 생겼다. 필자가 부목사로 6년간 섬길 때 신임 강도사가 들어왔다. 사역에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강도사의 언행이 시정잡배(市井雜輩)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하였다.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발생하였기에 너무 충격적이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억장이 무너져 담임목사님께 조용히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때 느낌이 이제 D교회를 사임해야 할 때가 온 것이구나. 선배 목사님에게 사실을 상담했더니 조용히 사임하면 하나님이 위로해 주실 것이라 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과 교회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사임했다. 40세 나이에 갈 곳이 없어서 개척교회를 준비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개척교회, 꿈에도 생각지 않은 개척교회를 하겠다고 생각하니 앞이 막막했다. 아는 것도 준비된 것도 없었다. 지금은 총회 전도부에서 개척교회 세미나를 개최하여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최소한의 재정 지원도 해주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전 재산이라고 할수 있는 아파트를 팔아 개척교회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또 아이들이 졸업할 때 찾게 되는 초등학교 저축 통장을 미리 해약하여 개척교회 준비에 보태기로 했다. 그리고 약 2달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원, 세미나, 작정기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제일 먼저 개척교회는 아파트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주일이 되면 우리집 아이들이 이웃교회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자기 친구들 5명을 데리고 왔다. 꼬맹이들 5명과 함께 개척교회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그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귀중하게 보였다. 이때부터 한 영혼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나중에 교회학교 아이들이 300명 이상 된 것도 이때 훈련을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개척교회를 하고자 하는가? 갈 곳이 없어서 개척교회를 하는가? 나는 앞으로 이런 교회를 세우고 싶다고 개척교회 목회 비전을 작성하여 만나는 지인들에게 한 장씩 나눠 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척교회 목사는 서로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잘 안 만나 준다. 그런데 비전을 듣고 제일 먼저 해양대학 동기인 친구가 감동받아 이스타나 승용차 한 대를 기증해 주었다. 이때부터 벳세다 광야에서 일어난 5병2어의 기적이 시작되었다. 대책없이 시작했지만 많은 분들이 물질과 재능기부로 동참하였다. 개척교회는 김해시 장유면 부곡리 691번지 였다. IMF 이후 부도난 공장 건물을 임대하여 대지850평, 건평150평으로 시작했다. 공장 건물을 예배당 용도로 인테리어를 시작했는데 아무리 돈을 발라도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때 다양한 분야에서 돕는 자들이 찾아왔다. 천장 인테리어, 바닥 타일, 벽면 페인트, 전기공사, 주방공사... 모두 다 자원 봉사자들이었다. 심지어 복음 선교선 한나호Ⅱ 선교사들이 한달 동안 함께 합숙하며 공사에 참여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동남아 더운 지방의 사람들인데 한국의 추운 겨울 1월과 2월에 봉사한 것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나중에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초청 행사를 하려 했는데 모두 다 사양하고 오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해 보면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보내주신 것 같다. 정말로 주님의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고백하게 되었다. 드디어 2000년 2월 28일 개척교회 설립 예배를 드렸다. 창립 멤버는 가족(5명)으로 시작하였다. 130평 넓은 예배당 공간에 가족 5명(사모, 초4년, 1년, 5살)이 앉으니 썰렁하였다. 그때 큰아이 초등 4년 학생이 예배 반주를 하였고, 교인이 없다고 몇 주 동안 친척이 렌탈(rental) 교인으로 참여해 주었다. 또 감동적인 것은 개척교회 예배만 드리는 교인으로 통영에 정박해 있던 복음선교선 한나호 선교사들 약 10명이 매주 시외버스를 타고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 사상 터미널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매 주일 그분들을 모시고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너무 행복했다. 비록 렌탈(rental) 교인이었지만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었다. 아마 전통교회 목사는 한 영혼의 가치를 이처럼 간절하게 느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교인이 없으니 새벽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혼자 밤 늦도록 기도하다가 교회 쪽방에서 잠을 자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한번은 새벽에 밖에서 교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분이 새벽 기도하려고 교회 문을 두드린 것이다. 목사로서 너무 미안하고 창피하여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때 들리는 음성이 주님이 새벽 기도를 시작하라는 음성으로 들렸다. 그 후에 한 번도 새벽기도를 쉬어 본 적이 없다. 주일날 어른 출석 40명일 때 새벽기도 교인이 20명이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확신한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16: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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