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인도 속담이라고 한다. 부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존재다. 오죽하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했겠는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한다. 자식이 부모가 한 희생의 반의 반 만큼만 해도 효자 중의 효자가 될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위해 희생하기는 어렵다. 성도가 주님을 닮아 희생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문제다.
50~60년대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했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된 부모들이 자기 자식만큼은 잘 배우고 출세하라고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해주는 것에 대한 비유였다. 지금은 그런 부모의 사랑이 ‘강남 학군’으로 변했다. 앞으로는 또 무엇으로 변하든지 반드시 변하고야 말 것이다. 그게 부모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종려주일도 지나고 부활절도 지났다. ”이 또한 지나갔구나“가 아닌 ”지금 여기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붙들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이기셨기에 우리도 이겨내야 한다. 주님께서 부활 허셨기에 우리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부활은 우리 모두의 새롭고 유일한 희망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초점은 언제나 자기 자녀에게 쏠려 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오직 자기 자녀에 관심을 쏟을 뿐이다. 눈동자처럼 우리를 지켜보시는 그분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여야 하는가를 놓쳐서는 안 된다. “네 행한 그대로 갚아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이 경각심이자 소망이어야 한다.
출세깨나 한 아들이 늙으신 어머님이 거슬린다고 제주도 여행 가자고 속였다. 제주도 어느 한적한 곳에 어머니를 버려두고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혼자 남은 엄마는 낯선 제주도를 헤매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경찰이 자초지종을 노모에게 물었지만 끝내 입을 다물었다.
경찰은 전 수사망을 동원하여 아들을 찾았다. 경찰은 아들을 제주도로 끌고 와 엄마와 대면을 시켰다. 그러나 엄마는 자기 아들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했다. 이 사실을 알리면 자식이 처벌을 받을까 봐 입을 다문 것이다. 이를 지켜본 자식은 그때서야 이실직고 하며 어머님께 용서를 빌었다.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 37-40)
부모 사랑은 생신 때 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1년 365일 내내 부모를 잊어서는 안 된다. 부모 중의 부모인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우리 삶의 중심은 언제나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어야 한다. 부모를 잊으면 고아가 된다. 하나님을 잊으면 죄인이 되고 형벌을 받는다.
종려주일의 의미와 부활절의 승리는 우리 신앙의 중심 중의 중심이다. 부활은 단지 기독교적 사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너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해주는 하나님의 선언이어야 한다. 창조도 그렇고 종말도 그렇고 천국도 그렇다. 오직 자기 자녀에 대한 사랑 일념일 뿐이다. “000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