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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지역교회

부·경 역사연구회 제106회 정기발표회

박삼철 기자 입력 2026.01.23 13:45 수정 2026.01.23 13:45

부산진교회(통합, 담임목사 신충우) 1층 다목적홀에서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회장 박시영 목사) 제106회 정기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부산진교회(통합, 담임목사 신충우) 1층 다목적홀에서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회장 박시영 목사) 제106회 정기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최초로 호주 선교사에 의해 1891년 10월 12일 설립되어 134년의 역사를 지닌 부산진교회(통합, 담임목사 신충우) 1층 다목적홀에서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회장 박시영 목사) 제106회 정기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발표회에 앞서 드린 제1부 예배는 행정국장 엄민섭 목사(영천 대창중앙)의 인도로 박수웅 은퇴목사가 ‘자유의지와 자유의지의 반납’(눅15:11~24)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제2부 연구발표회는 회장 박시영 목사의 진행으로 전 문성대학교 교수 양재한 은퇴장로(한빛)가 42페이지 분량의 ‘진영교회의 시작과 민족주의자 김성윤’이라는 제목으로 연구한 것을 발표했다. 양 장로는 “진영교회의 시작은 ‘조선예수교장로회 史記 上/(1928년 발행)의 1901년 설립 등 세 가지 갈래를 기록에서 찾을 수 있었고, 특히 할만한 것은 1974년 경남(법통)노회 100회 기념 화보집에는 1913년 4월 김성윤 家(집)에서 시작했다”라는 것이다. 이에 양 장로는 ’김성윤의 삶과 기독교, 김성윤과 진영교회, 김성윤과 실력양성운동, 김성윤의 자녀들’에 대한 탐구를 했다. 결론적으로 김성윤은 1870년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구한말 참서관(參書官)이라는 벼슬을 가졌으나 1910년 치욕의 한일합병을 이유로 하여 진영으로 은거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진영으로 이거 하기 전 노세영 미국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노 선교사가 영주동교회를 설립할 때 그 교회에 출석하였으며 이후 진영으로 와서 자신의 사랑방을 예배드리는 곳으로 내어 놓았는데 이것이 진영교회의 시작이다. 이후 민족을 살리기 위해 후학들에게 유학자금을 지원하였고, 6·25 전쟁 시에는 큰아들 김영화는 미국 통역병으로 근무하다가 북한으로 끌려가 소식이 두절되었고, 둘째아들 김영봉은 일본 메이지대학 졸업한 지식인으로 1960년 4·19 혁명 후 초대 진영읍 민선 읍장으로 6·25전쟁 시 능욕을 당한 후 끝내 살해된 여동생 김영명과 다른 피학살자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주도하다가 구속되었고, 끝내 명예 회복을 하지 못하다가 1985년 별세했다. 이 과정에서 김성윤 가문은 풍비박산(風飛雹散)되었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이 발효되어 진실규명으로 억울한 죽음이 낱낱이 밝혀졌다. 억울하게 죽음과 고통에 따른 명예가 회복되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하며 공존할 진정한 평화, 이 문제를 누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라고 하면서 끝을 맺었다.
한편 부경기독교 역사연구회는 지역의 기독교 역사를 공동으로 연구하며 이를 통해 지역교회를 섬기기 위한 목적에서 2006년 1월 20일 창립된 바 있으며 이날 발표한 양 교수의 글 외에도 106호에는 이종전 교수의 ‘스크랜턴의 생애와 그 업적’, 이상규 석좌교수의 ‘6·25전쟁의 기적’, 윤원한 교수의 ’미국장로교회(PCA)의 역사와 특징’이라는 제목의 글도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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